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한반도가 ‘강 대 강’의 격랑 속에 휩쓸려가면서, 청와대의 고민이 커져가고 있다. 청와대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그동안 파탄난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청사진은 꺼내보지도 못한 채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실험 당일인 3일에 이어 4일에도 북한발 한반도 안보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부심했다. 문 대통령은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전 11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밤 9시45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밤 10시45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밤 11시30분)과 연쇄 통화를 하며 북한의 6차 핵실험 대처 방안 등을 협의했다. 또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엄중한 안보 상황에 대한 초당적 대처, 그리고 또 생산적인 정기국회를 위한 여야정 간의 소통과 협치를 위해서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 구성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여야 5당에 협력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발언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문 대통령은 3일 핵실험 직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 “강력한 응징”, “완벽한 고립” 등 강도 높은 표현을 쓴 데 이어, 4일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지금과 차원 다른 북한이 절감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강력한 조처”를 언급했다. 이들 용어 선택에서 북한의 예상치 못한 도발에 대한 당혹감이나 초조감이 묻어난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나 정부의 이산가족상봉, 군사회담 제안에 대해 ‘화성-12’형, ‘화성-14’형 등 신형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등 잇따른 군사적 도발로 대응해온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크다는 방증이다. 청와대 내부에선 자칫 대결구도가 고착되면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 구상이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제재와 대화의 병행 추진’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대북정책 기조의 전환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만 제재의 목표가 대화라는 기본 원칙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강력한 대응을 지시하면서도 “모든 외교적 방법”에 대한 주문을 잊지 않았다.
문제는 북한이 청와대의 뜻대로 제재와 압박에 굴복해 대화로 나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한은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이 더 높다. 도발→제재→도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서 수단으로서 대화를 강조한 적이 결코 없다. 제재·압박의 결과로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제재와 압박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재·압박 강화’라는 청와대의 방침 또한 성과로 이어질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제재와 압박이 자동으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면 전환의 사다리 구실을 할 구체적 방안들이 함께 모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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