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3년 파탄난 외교안보통일
최대석교수 인수위원 낙마 상징적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작동 안해
최대석교수 인수위원 낙마 상징적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작동 안해
남북관계 ‘최후의 안전판’으로 꼽힌 개성공단 폐쇄는 ‘박근혜표 대북정책’의 파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한 대응이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때부터 예견된 사태란 분석이 많다.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유력하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의 갑작스런 낙마는 이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비극적 운명’을 살짝 드러낸 맹아적 조짐이었다. 최 교수가 인수위원 임명 엿새 만에 사퇴한 배경을 두고선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미처 꽃도 피우기 전에 져버린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 수립을 주도한 최 교수는, 대북 압박 정책을 비판한 ‘대북 협상파’였다.
최 교수의 낙마 원인으로 ‘국가정보원 개입설’이 주로 언급되는 것도, 남북관계 파탄의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다수 전문가는 박 대통령의 인식 저변에 줄곧 ‘북한붕괴론’이 있었다고 본다. 대통령을 사로잡은 북한붕괴론의 이면엔 국정원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의 근거로 제시된 ‘개성공단 임금의 핵무기 전용론’도 국정원의 미확인 첩보가 바탕이 됐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가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지난 3년간 발언이 이를 방증한다. 박 대통령은 ‘대북 억지력 구축’ ‘북한 체제 전환’ ‘북한 내부의 공포정치’를 꺼내들어 북한을 자극하곤 했다. 이산가족 문제를 강조할 뿐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다.
5~6차례 남북 유화 국면을 파고들 기회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 전략적 비전을 세워 유연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단기적·즉흥적 명분 싸움에 매달렸다. 북한이 2013년 6월 당국회담을 제안했지만, 정부가 북한 수석대표의 ‘급’을 문제삼아 회담이 무산됐다. 2014년 2월 고위급접촉도 기대를 모았지만, 한 차례 이산가족 상봉에 그쳤다.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한 정부 태도에 북쪽이 반발한 탓이다. 2014년 10월에는 북한의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핵심 3인방’이 인천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방남해 남북대화의 기대감을 높였지만 정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마지막 기회는 지난해 8·25 합의였다. 합의 결과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민간교류가 활발해졌지만 8·25 합의 이행 문제를 논의한 제1차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금강산관광 재개 관련 이견이 이유로 거론됐지만, 한·미 정상이 10월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로 다루겠다”며 대북 압박 강화 방침을 천명한 게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많다. 남북, 북·미 대화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자 북한은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박 대통령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개성공단 전면중단 등 ‘대결적 맞대응’으로 응수했다. 그렇게 남북관계가 파탄났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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