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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오늘밤 끝장보자 빵야 빵야” 외로운 북한 병사를 울렸네

등록 2015-08-28 15:25수정 2015-08-28 16:27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됐던 대북 확성기는 2004년 남북정상급회담 합의에 따라 철거했었다가 2011년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재설치됐다. 설치만 해두고 방송은 하지 않던 국방부는 지난 10일 대북방송을 재개했다가 25일 낮 12시 방송을 중단했다. 사진은 2004년 6월16일 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오두산 임진강변 인근 최전방초소에서 장병들이 확성기를 해체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됐던 대북 확성기는 2004년 남북정상급회담 합의에 따라 철거했었다가 2011년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재설치됐다. 설치만 해두고 방송은 하지 않던 국방부는 지난 10일 대북방송을 재개했다가 25일 낮 12시 방송을 중단했다. 사진은 2004년 6월16일 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오두산 임진강변 인근 최전방초소에서 장병들이 확성기를 해체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뉴스분석 왜? / 대북 확성기 논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이번주 초까지 남북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긴장 상태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25일 낮부터 확성기 방송은 중단됐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확성기를 철거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남북 상황에 따라 다시 방송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가 군사 분계선 인근 마을을 찾아 대북 방송을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확성기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남북의 미래를 위해 확성기 방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민의 지점들을 짚어봤습니다.

  

경기도 김포시 보구곶리는 임진강이 바로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마을이다. 날 좋으면 강 건너 북녘땅도 훤히 보인다. 전략적 위치 탓에 해병대 부대가 이 마을 바로 옆에 위치해 있고 경계 근무가 철저하다. 24일 오후 3시 이 마을 문수산 자락 너머에선 웅웅거리는 방송 소리가 요란했다. 군부대에 설치된 대북 방송 확성기가 뿜어내는 소리였다. 산 너머에서 북쪽을 향해 설치된 확성기라 무슨 내용의 방송인지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아나운서 두명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2575 해병대는 이날 이곳을 통제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한 30여분 방송을 듣고 있는데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부활의 ‘네버엔딩스토리’라는 노래였다. 이어 부드러운 음색을 가진 한 여성 가수의 노래도 흘러나왔고 트로트풍의 흘러간 가요도 들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포탄이 날아올 것 같은 대북 긴장 국면에서 햇볕이 부서지는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한가로운 음악을 듣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방송을 듣고 있는 전방의 북한군도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대북 방송 한다고 그게 효과가 있을까. 내가 이 마을에서 나고 평생을 살았어. 50년 넘게 북한군이 해대는 방송도 들었지. 들을 때마다 저 새끼들 또 거짓말하는구나 생각했지. 똑같은 방송이니까 듣다보면 귀가 무뎌져. 오히려 이런 민통선 마을이 반공주의는 더 강할 걸. 쟤네(북한)들도 마찬가지겠지.” 마을회관에 앉아있던 유아무개(67)씨가 말했다. 유씨는 대북 방송에 회의적이다. 그저 빨리 대피소 생활을 끝내고 싶을 뿐이다. 이튿날 낮 12시 남한은 대북 방송을 중단했다.

 

“대남 방송 50년 들어도 난 안 바뀌던데…”

확성기에 대한 유씨의 경험과 국방부의 분석은 온도 차이가 있다. 국방부는 이번 남북 대립 국면에서 북이 먼저 대화를 요청하고 목함지뢰 폭발 사고에 유감까지 표현한 것을 두고 확성기의 위력이 입증됐다는 입장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2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어찌 됐든 북한이 우리 쪽의 대화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다가 이번에는 만났다. 확성기 방송 재개의 힘이다. 북한이 적어도 대북 방송에 민감해하는 게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왜 이렇게까지 대북 방송에 민감한지는 분석이 필요하다. 대북 방송이 실제 전방의 주민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적극적인 조처를 취한 것일 수도 있고, 더는 남북관계가 악화 일로로 가지 않게 하려는 단순한 목적일 수도 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북이 남쪽의 확성기 방송 중단을 끈질기게 관철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북은 서로 대남, 대북 방송을 통해 상당한 신경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전력 사정이 급격히 악화됐고 북쪽의 대남 방송 장비는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 반면 남쪽의 성능은 더욱 좋아졌다. 북이 우리 군의 대북 방송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대남 방송 능력이 없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직접 들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웅변
서정적인 가요에서 케이팝까지
원색 비난보다 부드러운 체제 홍보
직접적 효과에 대해선 평가 엇갈려

한국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귀신의 공포와 폭격의 위협
적군 마음 무장해제한 심리전
탈북 병사 “귀기울이게 되지만
방송 듣고 넘어온 사람은 없어”

현재 전방에 배치된 우리 군의 확성기는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재설치한 것이다. 군사분계선 지역 11곳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했는데 확성기 장비 한개는 500와트 고출력 스피커 마흔여개로 구성된다. 장비 자체로는 2000년대 초반에 설계된 것인데 확성기 출력을 최대로 하면 밤에는 24㎞, 낮에는 약 10㎞ 밖까지 소리가 전달된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개성은 군사분계선에서 10㎞ 정도 떨어져 있다. 개성까지 적어도 ‘웅웅’ 하는 소리 정도는 전달된다는 게 북한이탈주민의 설명이다.

방송은 국방부 국군심리전단에서 제작한다. 원고는 장교급 군인이나 군무원이 작성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내용이 에프엠(FM) ‘자유의 소리’ 방송과 유사하다. 총 4개 분야로 구성돼 있는데, 자유민주주의 홍보는 국내 소식 전파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과거와 달리 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차분하게 체제 홍보를 하는 내용이 주라고 전했다.

심리전과 관련한 주요 서적인 <심리전-이론과 실제>(2012·심진섭 지음)를 보면 ‘확성기 방송 원고 작성 요령’으로 ‘정확한 정보 이용으로 욕구 불만을 자극해야 한다. 반복과 공식적인 사실 위주로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 적측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정서감에 호소해야 한다. 대상 집단의 당면한 현실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 적개심 또는 복수심을 유발하는 내용은 피한다’ 등이 소개돼 있다. 국방부가 방송을 제작할 때 대략 비슷한 원칙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김포시 월곶면의 한 주민은 “이번에 재개된 대북 방송은 김정은을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고 목함지뢰를 누가 설치했고 왜 남한이 대북 방송을 재개할 수밖에 없었는지 당위를 설명하는 내용 위주였다”고 설명했다. 이 주민이 1분여 녹음한 대북 방송을 들어보니 한 여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지난 8월4일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수색작전 중이던 대한민국 장병 두명이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북한군은 군사분계선을 불법으로 침범해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한 지뢰도발을 자행한 것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조와 어조 사이 호흡을 신경써가며 최대한 전달이 잘되도록 노력하는 말투였다.

이번에 우리 군은 케이팝도 틀었다. “다 꼼짝 마라/ 다 꼼짝 마/ 오늘 밤 끝장 보자/ 다 끝장 봐/ 오늘 밤 끝장 보자/ 빵야 빵야”라는 노랫말을 담은 빅뱅의 ‘뱅뱅뱅’과 “소원을 말해봐/ 지루한 날들이 넌 지겹지 않니/ 평범한 생활에 넌 묻혀버렸니/ 이제 그만 깨어나”라는 노랫말을 담은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등의 노래가 방송됐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지난 25일 중부전선에서 대북 확성기의 전원을 내리는 장병의 모습. 사진제공 합동참보본부
지난 25일 중부전선에서 대북 확성기의 전원을 내리는 장병의 모습. 사진제공 합동참보본부

확성기로 나간 ‘귀신 목소리’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 최선이다’라고 가르친다. 심리전은 그런 면에서 최고 난이도의 전쟁이다. 심리전에는 주로 선전물과 확성기가 동원되는데 확성기의 사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리전을 연구한 여러 자료들을 보면, 1944년 6월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확성기를 사용한 기록이 나온다. 당시에는 200~300m 정도밖에 소리가 퍼져나가지 못했는데 전쟁이 끝날 때쯤에는 성능이 개선돼 3.2㎞ 밖까지 방송하게 됐다고 한다.

한반도 군사분계선 일대에 확성기가 설치돼 논란이 된 기록은 1949년 언론 보도로 확인되는데 당시 <동아일보>(1949년 6월26일치)를 보면, “내무장관으로부터 강원도 지방에 파견한 특파강사 조영환씨는 홍천군 신남면 부평리 삼팔선 접경 육○○고지에 확성기를 장치하고 지난 십이일 종일토록 대이북방송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이북 삼일오 고지에서 공비들이 욕설을 건네며 발포하였으나…(이하 중략)”라고 전했다.

확성기나 전단지와 같은 심리전물은 한국전쟁 때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미국은 장교 4명과 병사 20명으로 구성된 전술정보파견대를 1950년 가을 남한으로 보냈다. 파견대는 전방 사단에서 트럭에 확성기를 달고 방송을 했다. 제8군 심리전 기록에는 1950년 10월24일부터 이틀 동안 확성기 방송으로 75명의 포로를 확보했다고 돼 있다. 제1기병 사단의 자료에는 9월22일부터 10월9일까지 확성기 1개당 평균 300명 정도를 항복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군 심리전지부가 1950년 9월5일부터 11월21일까지 11주 동안 2728명의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투항 이유를 조사한 결과 904명(33.1%)이 전단지와 확성기 같은 심리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확성기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적의 병사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적군의 지도자가 못 듣게 할 방법도 없다는 점에서 전단지와는 다른 심리전의 무기였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때도 확성기가 활용됐다. ‘붙잡힌 포로 중 81%가 확성기 방송을 듣고 이해했다고 밝혔다’는 조사 기록도 있다. 베트남전 때는 미군이 숲속에 숨어 있는 게릴라들을 투항시키기 위해 귀신 소리와 같은 효과음을 밤에 확성기로 내보내 적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귀신의 음성을 흉내낸 목소리로 “난 죽은 사람이야. 난 지옥에 있어. 너 아직 살아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기회가 있어. 집으로 가”라고 베트남어 방송을 했다.

걸프전 때(1990년 8월2일~1991년 2월28일)도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확성기를 활용해 수많은 이라크군을 투항시켰다. 가장 효과를 보았던 것은 파일라카섬 작전으로 기록되는데 미군은 파일라카섬에 고립된 이라크 군인들에게 총 9번의 심리전 방송을 해 “항복하지 않으면 다음날 모두 죽는다”고 위협했다. 1405명의 이라크 군인들이 항복했고 미군은 총알 한방도 쓰지 않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전투가 벌어진 때 확성기 등의 심리전 효과에 대한 기록이다. 한반도와 같이 휴전 상황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확성기가 사용된 예가 없고 이와 관련한 연구기록도 없다. 그저 확성기가 일정 정도의 심리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들만 존재한다.

일각에선 ‘확성기의 위력에 북이 굴복했다’는 식의 단순한 분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27일 통화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 근무하는 북한군에게 어느 정도의 심리적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이번 북의 유감 발표를 ‘확성기 재개 전략’이 승리한 것으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다. 북은 지금 ‘두개의 코리아’ 전략을 쓰고 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안보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기에 국가간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북 방송을 그들의 치부를 찌르기 때문에 피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간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과정에서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는 “북한은 소니(전자회사)가 만든 <인터뷰>라는 영화에도 발끈했다. 그것은 북한 주민에게 영화가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적 존재인 최고지도자를 모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북의 특수성 탓이다. 확성기 방송 재개에 발끈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독은 ‘비방 심리전’을 삼갔다

주승현(34·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통일학 박사)씨는 2002년 귀순한 전 서부전선 대남제압방송국 제압조장(상급병사)이었다. 주씨는 25일 <한겨레>와 만나 “북한 병사들에게 대북 방송이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전방에서 ‘사랑의 미로’(최진희)나 ‘이등병의 편지’(김광석) 같은 노래가 많이 들렸다. 북한 사람들이 듣는 것과 비슷한 멜로디라 그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진다. 최전방에 나온 몇달은 대북 방송 내용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쯤 되면 방송 내용이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어느 정도 귀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주 박사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북한군이 귀순해온다는 주장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도 그렇지만 내 주변 북한이탈주민 중에 확성기 방송 듣고 남한으로 온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 박사는 “이번 남북 대치 국면에서 대북 방송 재개가 핵심은 아닌 것 같다. 북은 박근혜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은데 최근 박 대통령이 흡수통일론조의 발언을 하고 이어 대북 방송까지 재개하니 북에 대한 공작이 다각화됐을 때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현재의 북한 능력으로 대북 방송 정도는 무력화할 능력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북의 유감 발표 이후 확성기 방송은 중단했지만 확성기 자체를 철거하지는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문에 명시된 비정상적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2004년 6월4일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남북은 △2004년 6월15일부터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과 게시물,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한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선전수단들을 다시 설치하지 않으며 선전활동도 재개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표면적으로는 남쪽이 먼저 대북 방송을 재개했으니 남쪽이 합의사항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북이 비정상적인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2004년 합의문만을 금과옥조처럼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이번과 같은 준전시 상황에 가까운 남북 대립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큼만 명확한 여론이다. 참고할 것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은 동독을 깎아내리는 심리전을 삼갔다는 점이다.

김포/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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