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열린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관람무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시가행진을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지난 26일 제7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10년 만에 서울 강북 도심에서 군 장병과 장비들이 시가행진을 했다. ‘대북 무력 시위’를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 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가 핵을 사용할 경우 대량 응징·보복을 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 핵전쟁 자체를 막겠다는 데 초점을 둔 ‘응징적 억제’다.
응징적 억제에 중점을 둘 경우 북한의 도발을 예방하는 효과는 강력하나, 이를 넘어 만약 도발할 경우엔 초기에 전면적인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 처지에선 일단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대량보복을 당할 것이 확실하므로 확전을 자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초반부터 전면적인 핵공격을 하는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한국이 보기 드문 군사 행진을 열고, 핵 위협을 하는 북한에 경고했다”고 시가 행진 내용을 소개했다.
2차 대전 이후 소련·중국·동유럽·북한 등 사회주의권, 개발도상국, 전체주의 국가 등이 대규모 열병식을 자주 열면서 군대 시가행진은 ‘낙후’, ‘호전’, ‘전체주의’ 인상이 강해졌다. 민주 국가에서는 프랑스가 혁명기념일에 군대가 대규모 시가행진을 하나, 대부분 나라는 전몰자를 위한 기념행사로 치러진다.
북한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인 지난 2월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 참가자들이 군홧발을 높이 치켜들고 거위걸음으로 행진하는 장면.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대규모 열병식의 시초는 옛 소련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11월7일 나치 독일군이 모스크바 턱밑인 30㎞ 인근까지 진격해왔다. 모스크바 시내에서도 독일군의 대포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소련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 상황인 이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러시아 혁명 24주년을 기념하는 화려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당시 소련 최고 지도자 스탈린은 라디오 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모스크바에 남아 수도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시 붉은 광장의 열병식은 지리멸렬하던 소련의 결사항전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화려한 열병식을 마친 소련군은 모스크바 외곽의 전선으로 달려갔다. 시민들은 큰 용기를 얻었다. 이후 소련은 모스크바 사수에 성공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 열병식은 독일-소련 전쟁에서 소련 승전의 계기가 됐다.
2018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에서 대규모 열병식 개최를 국방부에 지시하자, 공화당과 민주당 가릴 것 없이 강력히 반발했다. 공화당의 존 케네디 상원의원은 “자신감은 침묵으로 표현된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이며 이를 일부러 과시할 필요는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북한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고 조롱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열병식을 개최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미사일을 자랑하거나 구 소련이 붉은 광장에서 벌이는 대규모 군 행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승리를 기념한 이후 열병식을 하지 않았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7월4일 워싱턴에서 독립기념일 축하행사로 ‘미국에 대한 경례를 위한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미국 언론은 이 행사가 군의 문민통제 정신을 훼손하고 군을 정치에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 응집을 위한 정치적 지지대로 군대를 활용했고, 이는 미국의 전통적 군 문민통제 정신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군사독재 시절인 1970년대까지는 매년 10월 국군의날이면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하고 강북 도심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서울 도심 시가행진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1980년대 전두환 정부 때 3년에 한 번으로 줄었다가,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이후 5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더 줄었다.
지난 2월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대륙간탄도탄인 화성-17형이 10기 이상 등장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시간이 갈수록 시가행진을 줄인 한국과 달리 북한은 시간이 갈수록 열병식을 더 자주 하고 있다. 북한 경제 형편이 힘들수록 나라 밖으로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고 내부적으로는 체제가 흔들리지 않게 인민들을 묶어두려는 것이다.
화려한 조명을 동원한 북한 심야 열병식은 무척 자극적이다. 평양 김일성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명의 병력들이 군홧발을 높이 치켜들고 행진(거위걸음)하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대규모 시가행진은 ‘공산 전체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은 1948년부터 1994년까지 김일성 주석 집권 기간 46년 동안 열병식을 13차례 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전쟁 피해 복구를 마무리하고 정치·경제 분야에서 안정기에 접어들자 1960·70년대엔 열병식을 줄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북한 형편이 어려워지자 대규모 열병식이 다시 등장했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한 17년 동안 열병식은 13차례 열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집권 기간 12년 동안 열린 열병식은 지금까지 모두 15차례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