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12일 오전 소집된 노동당 중앙위 8기8차 정치국회의에 마스크를 쓰고 참석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마스크를 쓴 모습이 북한 매체에 포착된 첫 사례다. 조선중앙텔레비전 화면 촬영. 이제훈 기자
북한도 결국 코로나19 대유행의 쓰나미를 피하지 못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12일 오전 노동당 중앙위 8기8차 정치국회의를 열어 북한 내 첫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사실을 확인하고 “최대 비상방역체계로 이행”을 선언했다.
2020년 1월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와중에 ‘코로나19 청정국’임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워온 김 총비서의 위기관리 능력이 중대 시험대에 올랐다. 김 총비서는 마스크를 쓰고 정치국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는 김 총비서의 첫 공개행사 마스크 착용이다. 김 총비서의 상황 인식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12일 오전 소집된 노동당 중앙위 8기8차 정치국회의에 마스크를 쓰고 참석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마스크를 쓴 모습이 북한 매체에 포착된 첫 사례다. 조선중앙텔레비전 연합뉴스
의료·방역 인프라가 열악한 북한한테 코로나19 감염자 발생은 커다란 도전이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는 “북한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탓에 모든 사람이 감염 감수성이 높아 엄청나게 전파력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일단 감염되면 중증 발생 비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며 “최대한 빨리 백신을 접종해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한·미 등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인다면 악화일로의 한반도 정세에 대화의 물꼬를 탐색할 ‘기회의 창’이 열릴지 모른다는 기대섞인 전망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도 이번 사태를 ‘기회의 씨앗’으로 삼으려는 듯 방역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제재와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은 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을 준비하겠다. 백신뿐만 아니라 진통제, 해열제 같은 대증치료제, 주사기, 소독약 등도 지원할 수 있을 때 지원하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총비서는 이날 정치국회의에서 백신 지원 요청 등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협력 필요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전 주민 집중 병 검진”과 “소독 사업 강화”, “비축해놓은 의료품 예비 동원 조처” 등을 지시했다. 그러곤 “당과 국가의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와 일심단결된 우리 인민의 힘은 이번 방역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위력한 담보”라고 강조했다. 2020년 1월30일 이후 2년 4개월째 지속돼온 국경 폐쇄에 더해 ‘내부 방역 강화’로 일단은 코로나19 확산에 맞서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김 총비서는 “국가 최중대(가장 중요한) 비상 사건이 발생했다”면서도 ‘전면 봉쇄’ 조처는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획된 경제사업에서 절대로 놓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방역도 강화하고, 생산도 더 열심히 하라는 난해한 지침을 내놓은 셈이다.
2일 오전 소집된 조선노동당 중앙위 8기8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앞에도 썼다 벗은 마스크가 놓여 있다. 조선중앙텔레비전 연합뉴스
김 총비서는 지금껏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 제공 제의를 ‘백신 신뢰성’을 이유로 거부했을뿐더러, 전임 문재인 정부와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백신 협력 제안에도 호응하지 않아 왔다. 북한을 상대해본 전직 정부 고위 관리들이 “김 총비서가 백신 지원을 외부에 요청할 가능성이 아직은 낮아 보인다”고 하는 배경이다.
김 총비서는 “6월 상순 당중앙위 8기5차 전원회의”를 소집해놨는데, 그때까지 방역의 성과와 21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 등을 두루 살펴 방역정책과 대남·대미 정책 조정 여부를 판단하리라 예상된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