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정견을 밝히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돌풍’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복잡하다. 연공서열 문화가 뚜렷한 보수 정당에서 당돌하고 거침없게 받아치는 ‘사이다’ 화법은 새롭게 편입된 2030 지지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의 주장이 실제 정치판에서 변화를 추동해낼지를 놓고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정치혁신·세대교체의 아이콘이 된 그의 진짜 생각은 무엇일까. 그가 2018년과 2019년 내놓은 책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와 <공정한 경쟁>, 그리고 최근 각종 언론 인터뷰와 토론회 발언을 통해 이준석의 ‘머릿속’을 분석했다.
청년층 표심에 소구하고 있는 그의 최우선 가치는 ‘공정’과 ‘경쟁’이다. 이런 기조는 ‘청년·여성·호남 할당제 폐지’ 주장에서 과격하게 표출됐다. 그는 할당제 대신 호남 등 지지세가 약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보들을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석패율제 도입을 주장했다.
젠더 이슈에 의문을 나타내며 반페미니즘 정서를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것은 다른 대중 정치인들과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복잡해진 성평등 정책이 더 많은 사회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며 “여성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진보가 진정한 여성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 방송 토론회에서도 다른 후보의 할당제 공약을 비판하면서 “열심히 준비한 사람을 청년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해도 되겠느냐”고 따졌다. 여성 비례대표 홀수번호 배치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의회에 진출시켜야 한다는 취지와 다르다”고, 군가산점 제도는 “여성의 사병복무 기회를 연 뒤 가산점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기조는 ‘트럼프식 갈등 이용 행태’라는 비난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층과 비지지층을 갈라치기 하고 이를 이용하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본다.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공정한 경쟁>
‘공정’과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배경엔 그의 노골적인 실력주의 가치관이 내재돼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 사회를 산업화와 민주화 태동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하며 “그런 시대 정신에 맞는 리더십이 부상하리라고 믿는다.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실력, 실력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의 ‘실력주의’ 가치관은 ‘공천 기초능력 평가시험’을 도입하겠다는 이번 전당대회 공약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공천 조건으로 △자료해석 △독해 △표현 △컴퓨터 활용 능력 등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승자에게만 공정한 경쟁은 정치의 목적이 아니다”(주호영)라는 반발이 나오자, 그는 2일 “자격기준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 능력을 키우도록 권장하는 의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 전 최고위원에겐 ‘박근혜 키즈’, ‘유승민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11년 12월, 그를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했다. 그는 ’박근혜 키즈’라는 평가를 부인하지 않지만,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공정한 경쟁>에서 “이해관계는 있어도 종속 관계가 생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 행운이었다”며 “한마디로 서로 이익이 되는 관계”라고 했다. 지난달 21일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내 발탁에 있어서 박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 그런데 탄핵은 정당하다”라고 표현해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샀다.
‘이준석은 유승민계’라는 규정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그를 향한 가장 강력한 공격 포인트다.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의 특수관계 탓에 ‘불공정 경선 관리’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유승민 전 의원과 자신의 아버지가 고등학교·대학교 동기임을 인정하면서도 “계파라는 것이 성립하려면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수직관계로 오더를 내리면 그걸 따르는 어떤 집단이 기본적 성격”(2일 <와이티엔>(YTN)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며 유승민계의 실체가 없음을 항변했다. 그는 자신을 ‘벼락 정치인’이라고 표현하면서 “젊은 층으로부터 보수가 외면당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제가 탄생할 수 있었다(<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전 최고위원이 대학생 시절 아버지 친구인 유승민 의원의 인턴으로 정치 경험을 쌓았던 사실은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는 그의 신념과 배치되는 ‘내로남불’ 행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나경원)라는 것이다.
“진보 세력이 환경, 노동, 인권이라는 3대 가치를 발굴해 전면에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것처럼 보수는 다시 한 번 매력적인 안보, 경제, 교육관을 정립해야 한다.”<공정한 경쟁>
이 전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보수의 세 기둥인 경제·안보·교육 가운데 경제와 교육이 무너졌으며, 이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일에 관해서는 “체제 우위를 통한 흡수통일 외에 방법이 없다. 통일 교육도 필요 없다”고 했고, 교육에 대해서는 “국공립대는 철저하게 수능으로, 공정성 시비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사립대는 선발 자율권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이 해고를 쉽게 해야 경영 효율성이 높아져 결국 사회에 득이 될 것”이라며 “청년 일자리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육체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일자리를 구분해 취업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진보와 보수의 중간 어디쯤 머문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그의 ‘보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태풍이 된 이준석, 지속가능한 정치인 될 수 있을까
이 전 최고위원의 상승세가 바람을 넘어 ‘태풍’이 된 건, 심리적 장벽을 낮춰온 그의 전략이 주효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당대회에 출마하고서도 에스엔에스(SNS)로 실시간 소통을 하는 기존 방식을 이어갔고, 기존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문자메시지 홍보는 하지 않았다. 어려운 정치 문법 대신 ‘셀럽’으로서 직설 화법을 이어가며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법을 안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고, 킥보드를 타고 다닌다. 시내 이동수당은 지하철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 전 최고위원은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가 됐던 젠더 이슈를 역으로 활용하기 쉽지 않았던 정치 환경에서 이를 부각하며 치고 나섰다”며 “진보 진영에서 이탈한 젊은층을 등에 업고 태풍으로 커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필요를 대변하기보다는 시대를 만났다는 느낌”이라며 “새로운 사람을 요구하는 기대감에서 떠오른 측면이 있지만 보수 정당이 요구해 온 애티튜드(태도)와 전혀 맞지 않는 측면, 형식 파괴 등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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