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통과를 비판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임차인입니다. 임대차법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규정을 보고 머릿속에 든 생각은 4년 뒤부터는 꼼짝없이 월세살이겠구나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천만 전세인구의 인생을 고통스럽게 합니까.”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5분 연설이 수많은 임차인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 활동을 하면서 어떤 불필요한 빌미도 주고 싶지 않다”며 세종시 아파트까지 처분한 점에서 진정성을 보여줬다는 호평은 여당에서도 나왔습니다.
통합당은 ‘윤희숙 바람’에 힘입어 ‘전세 종말론’을 띄우며 여론전에 나섰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임대차 3법으로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고 ‘서민 누구나 월세로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이 과연 주거안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통합당 행보를 보면 윤 의원이 호평을 받았던 이유인 ‘임차인 대변’은 어느새 사라지고 ‘임대인’이 그 자리를 대신한 모습입니다. 지난 3일 권영세 의원이 ‘부동산 현안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아주 정확하고 극명하게 임대차 3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장에서 관련된 분들 목소리를 직접 들려드리겠다”며 소개한 주인공은 전·월세 세입자가 아닌, 빌라와 오피스텔 등 8채를 가진 임대사업자였습니다. 그는 “낡은 빌라를 수리해서 임대료가 1년에 480만원 나오는데, 종부세가 600만원이 나온다. 빌라 하나는 1억4천만원에 전세를 줬는데, 종부세가 1200만원이 나온다”며 살 수가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전 국민 조세저항 국민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임대사업자협회 추진위원회 등을 국회로 초청한 것이었습니다. 전세 소멸을 두려워하는 임차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한 대안과 정책이 제시되지 않는 점도 통합당의 진정성을 의심케하는 대목입니다. 화제가 된 윤 의원 연설에서마저도 “축조심의과정이 있었다면, 임대인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고가 전세의 부자 임차인까지도 보호 범위에 포함할 것인지, 근로소득 없이 임대로 생계를 꾸리는 고령 임대인은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 등을 같이 논의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차인에 대해서는 전세 소멸을 언급하며 불안감만 조성했을 뿐, 정작 임대인을 위한 대책만 거론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부동산 관련 입법을 밀어붙이는 여당도 임차인의 현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주택자인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대차 3법의 정책 효과를 강조하려다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해 월세 부담에 시달리는 임차인들의 마음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샀습니다. 3주택자인 박범계 의원도 “평생 임차인인 것처럼 이미지 포장한다. 임차인을 강조하셨는데 소위 오리지널은 아니다. 국회 연설 직전까지 2주택 소유자이고 현재도 1주택 소유하면서 임대인“이라고 윤 의원을 공격했다가 “본인은 3주택자이면서 1주택자인 윤 의원을 지적할 수 있느냐”는 역풍을 몰고 오기도 했습니다.
전체 국회의원의 30%가 다주택자인 현실에서, 임차인의 현실과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다주택자 비율은 각각 23.3%(42명), 39.8%(41명)에 달합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두 채로 73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4주택자 박덕흠 통합당 의원은 <문화방송>(MBC) 인터뷰에서 “집값이 올라서 화가 난다. 투기하려는 게 아니라 평생 살아야 할 집인데 집값이 올라가면 세금만 더 내고, 의료보험 더 내고, 플러스 되는 게 없다. 플러스가 되어야 이해충돌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윤희숙 신드롬’은 국회의원 1주택 실천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여야가 되돌아봐야할 것은 임대차 3법의 입법 취지인 ‘임차인 보호’가 아닐까요.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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