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연합뉴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유권자 1천명을 상대로 조사해 15일 발표한 결과를 보니,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64.4%에 달했습니다. 특히 20대(76.1%)와 30대(70.8%)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감지됩니다. 박 시장이 목숨을 끊은 뒤 그를 두둔하는 ‘2차 가해’ 발언까지 쏟아지자, 민주당에서 일하는 2030 보좌진과 당직자들은 자괴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의 나’와 ‘자연인 나’ 사이에서 분열증에 가까운 혼돈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당의 주요 인사들이 보여준 빈약한 젠더 감수성을 바라보며 “당의 밑바닥을 보는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한 당직자는 “저쪽 당(미래통합당)에는 이런 일이 더 많을 텐데, 왜 안 터지냐며 ‘음모론’까지 펴는 윗세대를 보면 황당하다. 우리가 깨끗해질 생각은 안 하고 우리보다 더 더러운 사람이 있으면 문제없다는 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박 시장의 사망을 둘러싸고 ‘공사 구분’ 못하는 여권 인사들 반응에도 민주당의 청년세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박 시장이 맑은 분이라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었다”(박범계 의원)거나 “삶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에게 가혹하고 엄격한 그대가 원망스럽다”(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의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민주당 의원실 소속의 20대 보좌진은 “권력형 성폭력을 해결하라는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보다 박 시장과의 개인적 친분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어떻게 청년 마음을 얻겠냐”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에게 연대의 뜻을 밝히며 <한겨레> 젠더데스크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메시지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누구보다 젊은 여성 보좌진의 좌절감이 컸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도무지 떨치지 못합니다. 박 시장 사건의 피해자처럼 이들 역시 나이 든 남성 권력자를 지근거리에서 조력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20대 비서는 “피해자가 해온 그 일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남의 일 같지가 않은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고발 자체가 어려운 ‘권력형 성폭력’ 의혹에 대해 “아직은 밝혀진 게 없다”거나 “추모가 먼저”라는 당의 높으신 분들 반응에 스스로 입을 닫아 걸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견들은 대체로 당 지도부에 가닿지 못합니다. 국회 직원들의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만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의 연이은 행태에 정신이 혼미하다”며 “여당 보좌진으로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지 너무 큰 과제가 되어 버렸다”는 민주당 보좌진의 고민이 울려 퍼질 뿐이죠.
‘공으로 과를 덮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는 실무자와 보좌진으로 정치권 곳곳에 자리잡았습니다. 박 시장 빈소 앞에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이 뭐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 “예의가 아니다”라고 쏘아붙인 당대표와 달리, 민주당의 젊은 세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을 그곳에서 하고야 마는 것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라고요.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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