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회·정당

인간의 차별성 살리는 차별금지법, 이제는 제정될까요?

등록 2020-06-26 20:03수정 2020-06-27 02:0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주민·난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주민·난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즌 10까지 제작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 전세계에 ‘갓’ 열풍을 불러온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는 모두 좀비물입니다. 좀비물이 공포를 주는 이유는 단순명쾌합니다. “나도 좀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좀비물은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도망가고, 좀비가 된 동료를 안타까워하고, 좀비 무리를 물리치는 과정을 반복재생합니다. 이 반복재생이 심장을 쫄깃하게 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좀비들은 항상 인간을 좀비로 만들려 한다는 것입니다. 좀비들이 인간과 만나 환한 표정으로 인사하거나 손뼉을 마주쳐주면 가슴 졸일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전제는 인간은 좀비가 되기 싫어한다는 거죠. 결국 좀비물이 그리는 세계관은 세상을 좀비 단일 천하로 만들려는 거대한 욕망과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의 대립이 아닐까 합니다. 좀비물이 설득력을 가진다면 잿빛 차림에 똑같은 행동 패턴을 보이는 좀비의 ‘획일성’보다, 도망가고 싸우기도 하고 동료를 위해 희생하거나 배신도 하는 ‘차별성’을 가진 인간으로 사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에 많은 이가 공감하기 때문이겠죠.

안녕하세요? <한겨레> 정치부 기자 정환봉입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차별금지법’입니다. 최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법안 발의에 동참을 호소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조만간 입법을 추진할 바로 그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을 고민하면서 좀비물의 세계관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차별성을 지닙니다. 그 차별성은 스스로 좋아하거나 직접 선택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도 원치 않게 가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위로 얻은 것이건 차별성 때문에 ‘차별’을 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찰이 체포 과정에서 무릎으로 목을 8분46초 동안 눌러 숨지게 한 조지 플로이드처럼 말입니다. 이 사건은 혐오와 차별은 야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고 많은 이들을 인종차별 반대에 나서게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눈여겨볼 변화가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4월22~27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여론조사(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가 ‘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3월 인권위의 같은 질문에 대한 찬성률(72.9%)보다 15.6%포인트 높은 수치입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보입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 국면에서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이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해봤다’고 답한 비율이 91.1%였기 때문입니다. 좀비 떼처럼 맹목적인 혐오가 나를 노릴 수도 있다는 자각이 차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국회에서도 설레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9명은 지난 10일 국회 중앙홀에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적은 손팻말을 가지고 나와 8분46초 동안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조지 플로이드를 기렸습니다.

뜻이 모이고 있다면 무기를 마련할 때입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그 무기는 법입니다. 피부색, 민족, 성 정체성 등으로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지금 당장’ 필요한 무기입니다. 상황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정의당은 법안 발의에 필요한 10명의 의원을 모으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인권위도 발의에 얼마나 많은 의원이 참가할지 걱정합니다. 이전에 혐오세력의 공격으로 쓰러져 간 동료들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장혜영 의원에게는 항의 전화와 욕설 문자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리더들이 이런 위기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워킹 데드>의 릭 그라임스(앤드루 링컨)와 <킹덤>의 세자 이창(주지훈) 말입니다. 국회에도 리더가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파격 행보를 보이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입니다. 일부 의원들이 차별금지법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모진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비극의 반복을 막을 사람은 둘밖에 없습니다. 두 분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하고 300명 가까운 의원들이 함께 법안을 발의한다면 혐오의 공격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그 당연한 말에 두 분이 동의하지 않을 리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 릭과 이창 세자가 되어달라고 당부드립니다. 물론 누가 이창 세자를 하실지 결정하는 일은 두 분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정환봉 정치부 기자
bon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단독] ‘감사원장 대행 인정 말라’…관저·이태원 감사 관련자 ‘조직적 항명’ 1.

[단독] ‘감사원장 대행 인정 말라’…관저·이태원 감사 관련자 ‘조직적 항명’

“윤석열 체포” 공언한 오동운의 시간 끌기…국힘 추천 ‘큰 그림’이었나 2.

“윤석열 체포” 공언한 오동운의 시간 끌기…국힘 추천 ‘큰 그림’이었나

[속보]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 3.

[속보]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

“나 구속되면 정권 무너져” 명태균 폭로, 윤석열 계엄령 방아쇠 됐나 4.

“나 구속되면 정권 무너져” 명태균 폭로, 윤석열 계엄령 방아쇠 됐나

민주 “경호처 김건희 라인, 경찰 체포용 케이블타이·실탄 지급 검토” 5.

민주 “경호처 김건희 라인, 경찰 체포용 케이블타이·실탄 지급 검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