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편집국장이라면 어떤 기사를 신문 1면에 배치할 것인가. 자, 여기 준비된 두 가지 기사가 있다.”
2013년 여름, 저는 한겨레신문사 채용시험을 보고 있었습니다. 7~8명의 경쟁자들과 3차 토론면접을 치러야 했지요. 당시 토론 주제는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속보가 담긴 스트레이트 기사와 도심 길고양이 급식소를 취재한 기획기사, 둘 중 무엇을 신문 1면에 배치할지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토론자 대부분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택했습니다. 토론을 위해 급히 입장을 정한 2명만이 길고양이 기획기사를 택하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주제는 1면 기사로 뜨거운 논쟁을 벌이던 2013년 <한겨레> 토요판의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8년 전만 해도 으레 시의성 담긴 스트레이트 정치 뉴스가 신문 1면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던 때였지만, 토요판은 동물권에 대한 새 의제를 담은 고양이 기획기사를 1면에 냈습니다. 8년 뒤 동물권은 우리 사회 가장 관심 많은 현안이 됐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토요판부 기자 김미향입니다. 2019년부터 한겨레 토요판에 들어가는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기자로 일한 8년 동안 2년 하고도 절반을 토요판에서 보냈습니다. 인사철이 되면 희망하는 부서를 적는데, 토요판을 1지망으로 쓴 건 세 번이었습니다. 한 번은 떨어졌고, 두 번은 반영됐습니다. 토요판은 제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현안을 한두 시간 내 뚝딱 써내야 할 때, 정부기관 등의 보도자료에 나온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에 십수개 떠 있을 때, 독자들의 관심사와 먼 기사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럴 때일수록 사막의 오아시스는 달게 느껴졌습니다. 토요판에서는 일주일이란 귀한 시간이 주어졌고, 이 시대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을 좇을 수 있었습니다. 실험적인 아이템과 파격적인 문장 형식을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 이상 기삿거리는 무궁무진했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토요판의 기사가 읽기 힘들다는 의견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 네가 요즘 쓰는 기사들 참 좋더라. 근데 다 읽진 못했어. 너무 길어서….” 친한 친구이자 동종업계 기자인 친구는 신문에 나온 토요판 기사에 대해 덕담을 건네면서도 정작 읽진 못했다는 소감을 밝히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습니다. 또래 친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도 “요즘 눈이 안 좋아서 딸의 기사를 다 읽진 못하지만…”이라고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주변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저부터가 드넓은 회색 지면을 가득 채운 빼곡한 검정 글씨를 읽기가 무척 힘들어졌습니다. 퇴근하면 바로 기사창을 덮고 휴대폰 영상을 보는 날이 많았습니다.
미디어는 시대 상황을 반영합니다. 속보가 아닌 심층 기획기사가 신문 1면에 실리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워진 지금, 대부분의 신문이 토요판 혹은 주말판을 발행합니다. 2012년 1월 한겨레가 처음 토요판을 선보인 뒤, 신문업계의 토요일치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입니다. 가끔 토론면접 자리에서 소수의견을 낸 2명이 생각납니다. 8년 뒤 뜨거운 의제로 부상한 동물권 기사를 1면에 싣자고 한 소수의견자 2명은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이 매우 훌륭했던 것 아닌가요. 조금 앞서간 사람들이죠.
2012년 한 걸음 앞섰던 한겨레 토요판이 2021년 또 한 걸음 앞서 나아가려 합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기 전 만들어진 지금의 토요판 형식이 조금 달라지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술술 잘 읽히는 어렵지 않은 기사, 부담 없이 다가가는 가독성 높은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하는데, 과연 실천하고 있는지 가끔 고민합니다. 긴 기사가 가지는 효용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단편소설 한 편이 원고지 80장이라는데, 토요판 커버스토리는 원고지 50~60장 분량입니다. 주말마다 단편소설을 한 편씩 읽었던 독자들의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읽기 힘든 긴 기사를 내놓는 무거운 마음이란…. 저부터도 여백을 좀 더 넣을 수 없을까, 사진을 좀 더 많이 실을 수 없을까, 생각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하는 것 또한 쓰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토요판이 다음주부터 시즌2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한 걸음 읽기 편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가로 25㎝, 세로 36㎝ 크기의 타블로이드판인데요, 지금 신문의 절반 크기입니다. 작아서 가볍고, 더 신선하며 매력적인 토요판 신문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안뇽.
김미향 토요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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