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회의실 앞에서 국회 관계자들이 기자들이 ‘귀대기 취재‘를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5층에 있는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 회의실 밖으로 고성이 흘러나왔다.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회의실 앞으로 기자들이 모여 ‘귀대기 취재’(문틈 등에 귀를 대고 대화를 엿듣는 방식)를 시도했지만, 정확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직감적으로 오늘도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결국 이날 오후 4시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법안소위가 파행된 건 이날까지 모두 6차례로, 그동안 자유한국당의 ‘발목잡기’ 이유는 다양했다. ‘우리 당의 자체 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가 ‘국가지원금과 학부모부담금의 회계분리’ 주장을 넘어 이날은 교육부가 입법예고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문제 삼았다. 23일 <한겨레>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이날 회의 속기록을 입수해 당시 상황을 살펴봤다.
■ 교육부 차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두겠다”
이날 오전 ‘유치원 3법’ 논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성이 오갔다. 자유한국당이 문제 삼은 것은 교육부가 지난 16일 입법예고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등이었다. 개정안은 △사립유치원의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사용 의무화 △사립유치원 일방 휴원·폐원 등에 대한 행정제재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부가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 전에 ‘먼저’ 설명하지 않은 점을 따지고 든 것이다.
“우리 위원들한테 한번 와서 설명하시지 않았다, 시행령에 대해서는?”(김현아 의원)
“시행령과 관련된 내용은 10월25일 날 저희가 공공성 강화 방안 발표할 때 첨부 자료로 해서 법은 어떻고 시행령은 어떻고, 큰 대강에 대한 제시는 있었다. 시행령 조항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만 말씀드리지는 못했다.”(설세훈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
“왜 교육부는 자꾸만 죄송한 일만 하나?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는지 하나? 지금 여야가 의견이 갈리면서 법안 조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 당은 양보할 게 없다.”(김현아 의원)
김현아 의원은 곧바로 공격 상대를 박용진 민주당 의원으로 옮겨갔다.
“박용진 의원님, 법안 심사하면서 정말 저희 언론에 힘들었다. 한유총에서 제가 로비받았나?”(김현아 의원)
“제가 로비받았다고 그랬나?”(박용진 의원)
“로비받은 게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았나?”(김현아 의원)
“저는 로비 안 받았겠나, 한유총에서? 나는 오해 안 받았겠나, 다른 의원들한테? 무슨 얘기를 하자고 그렇게 얘기하나? 의원이 그 로비를 받아서 그게 정당하면 입법 반영하는 거고요, 말도 안 되는 건 거절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 대해서 뭐가 힘들다고 그러나? 저는 안 힘드나? 자기 힘든 거 다 얘기해요, 지금 여기서?”(박용진 의원)
박용진 의원이 “정부가 일을 안 했다고 다그쳐야지, 할 일을 했다고 다그치는 게 어디 있냐”고 말했지만, 김현아 의원은 계속 교육부를 몰아쳤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정부가 잘못한 것은 저희가 달게 받겠다”고 말하자 김 의원은 “뭘 달게 받을 거냐”고 물었다. 박 차관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두겠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그게 제일 비겁한 거다. 책임을 져야지 뭘 그만두냐”고 말했다. 그러나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까지 나서 교육부에 “시행령 중 법안소위와 겹치는 내용을 따로 정리해 오라”며 정회를 요구하자 보다 못한 조승래 법안심사소위원장이 나섰다.
“지금 박용진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나 김한표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나 다 에듀파인을 도입하자는 것 아니냐. 그리고 이미 현행 제도가 행정처분을 할 수 있게 돼 있고, (시행령은) 사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조승래 의원)
“그러면 그냥 시행령으로 하라.”(전희경 의원)
“아니, 그러면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의 법을 왜 냈나?”(조승래 의원)
“아니, 그러니까 시행령으로 하라고, 시행령으로.”(전희경 의원)
“그러면 지금 법안 철회하는 건가? 똑바로 얘기해 달라.”(조승래 의원)
결국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시행령 입법예고하면서 위원님들께 충분히 사전에 보고하지 못한 것을 사과드린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고 하면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20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법안소위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임재훈, 자유한국당 일방적 퇴장에 “멘붕 상태”
이날 오후 2시30분 재개된 법안소위에서는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유치원 3법’과 자유한국당이 마련한 별도 법안의 병합심사가 무난하게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에 대해 거의 일독(법안을 읽고 검토하는 작업)이 끝나갈 무렵 김현아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에 나섰다.
“원내지도부에서 지금 (교육부에서) 시행령 발표한 사항을 이제서야 알았다고 한다. 국회에서 법안 논의가 되는 상황에서 그 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을 사전에 아무 합의도 없이 시행령을 이렇게 입법예고한 것은 당초 법안소위 간사 합의사항이 아니라고 다시 간사 합의를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여기서 오늘 더는 법안소위를 진행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죄송하다.”
갑자기 회의를 더이상 진행하지 못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나도 짧지만 여당을 해봤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야당을 해보지 않았느냐”며 “차관님이 실수하신 것이다. 이렇게 민감한 상황에서 아주 작은 배려로 얘기했으면 매끄럽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을 교육부 때문에 저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해 달라”고 했다. 때아닌 ‘교육부 탓’을 하며 회의장을 나가겠다고 통보하자 바른미래당 간사인 임재훈 의원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처리할 것을 시사했다. 패스트트랙은 여야 간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쟁점 법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로,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이 계류 기간 330일을 넘길 경우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제가 1분만 말해도 되겠나.”(임재훈 의원)
“꼭 1분만 해야 한다.”(김현아 의원)
“아까 김 위원님 오기 전에 위원님들이 위원장 방에서 30~40분 정도 간담회 형식의 논의가 있었다. 오늘 이렇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바른미래당, 개인적으로는 제가 낸 중재안·수정안을 가지고 신속하게 의사일정에 돌입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아까 개진했다. 그런 점을 한번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임재훈 의원)
“(교육부가) 시행령으로 입법예고한 상태에서 이걸 무리하게 그렇게 신속법안으로 처리하신다고 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전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위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면서 저는 이만 물러가겠다. 약속한 1분이 지나서….”(김현아 의원)
결국 이날 오후 4시께 김현아·전희경·곽상도 의원은 차례로 모두 퇴장했다. 임재훈 의원은 “도대체 교육부의 시행령 발표와 이 법안 처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회에 들어온 지 석달밖에 안 됐지만, 도대체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며 “물론 교육부의 치밀하지 못한 일 처리에 대해선 저도 유감이지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거의 멘붕 상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왼쪽 둘째)과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맨 왼쪽)이 20일 오후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 회의실 앞에서 법안심사가 파행된 이유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모습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맨 오른쪽)가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다.
■ 유치원법 처리 ‘합의’는 지켜질 수 있을까
“사립유치원 관련법 등의 민생법안을 정기국회 내에서 처리한다.”(11월21일)
“사립유치원 관련 개혁법안을 적극 논의한 뒤 처리한다.”(12월15일 임시국회 관련 합의사항)
그동안 여야가 유치원 3법 처리를 위해 합의문을 작성하고, 서명한 것도 벌써 두번이나 된다. 이날 여섯번째 법안소위가 파행되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팔짱을 낀 채 착잡한 표정으로 회의실 앞에서 조승래 민주당 간사와 임재훈 바른미래당 간사의 브리핑을 지켜봤다. 교육위는 오는 26일 오전 10시 전체회의를 열어 유치원 3법을 재논의하기로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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