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2차 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원 정수 확대 반대’와 ‘중대선거구제’ 도입 목소리를 냈습니다. 기존 자유한국당 입장으로 알려진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도시는 중대선거구제+농촌은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는 결이 다른 주장이었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한번도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럴 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과거에 내놓은 관련 법안과 발언들을 들여다보면, 앞으로의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의원 정수 축소, 중대선거구제 도입’ 선거법 개정안 발의
현재 정개특위 위원인 김학용 의원은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200명으로 줄이고, 중대선거구제(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2~4명 선출)를 도입하는 것이 뼈대입니다. 당시 김 의원은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하는 이유로 “현재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아서 의원 개인의 직무에 대한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미약해지는 측면이 있고, 국민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감시 기능이 소홀해지는 문제도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제헌국회 때 국회의원 1명이 국민 10만명을 대표했는데 현재는 17만명을 대표해 국회의원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입니다. 또 국회의원 1명이 9만7천명의 국민을 대표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견줄 때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를 510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분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다’는 김 의원의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하는 배경으로 김 의원은 “교통·통신 등의 발전으로 생활권이 넓어짐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를 다소 광역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는 거대 정당에 유리하고 당내 파벌정치를 심화하는 부작용 등으로 일본·대만에서도 실시하다 포기한 제도여서 이를 도입하려면 면밀한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김 의원은 지난 정개특위 2차 회의에서 “국회의원 정원 300명이 마지노선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과연 현시점에서 의원 수 늘리는 것을 국민이 용인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부터 (선거제도 개편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면 중대선거구제로 갈 수밖에 없다 생각한다”는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중대선거구제 주장은 2020년 총선에서의 위기감과도 연결됩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40%대의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다수 득표자 1명만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한, 수도권과 부산·경남 등지에서 자유한국당이 대패해 ‘티케이(대구·경북) 지역 정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부정적, 의원 정수 확대도 반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과거 정개특위에서도 ‘의원 정수 확대 반대’를 고리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반대했습니다. 지난 1월23일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김진태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는 부정적이고, 의원 정수 확대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회의원선거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게 명칭부터가 이해하기 어렵고, 과연 국민들이 얼마나 이 제도를 이해할 수 있을지 저는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국회의원 총정수를 늘리는 안이 지금 여러개가 됩니다. 과연 이것을 우리 국민들이 허용을 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반대로 저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좌우,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큰 박수를 받으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절반으로 축소하는 법안을 발의하면 된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의원 정수를 360명까지 의석수를 늘린다? 글쎄요, 저도 의원이지만 이런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정개특위 자유한국당 간사였던 김재원 의원도 지난해 12월21일 정개특위 소위 회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의석수 확대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지금 내놓은 안이 뭡니까? 최소 316석에서 360석, 국민들이 납득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말씀하시기를 자꾸 국민 설득하자 하는데 국민이 설득이 되겠습니까? 저는 그에 대해서 도대체…. 그런데 말씀을 360석이라 해도 총선을 치르면 이게 360석이 될지 400석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아닙니까? (중략) 우리 지금 정치권에서 의석수 늘리는 것이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문제를 꼭 지적하고 싶어서 말씀드리고, 적어도 우리 당에서는 많은 의원들하고 토론을 해본 결과 현재 의석을 늘리는 선거구 제도나 선거법 제도는 반대한다, 그런 입장입니다.”
자유한국당 정개특위 위원이었던 박찬우 의원도 지난해 12월12일 정개특위 소위 회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쳤습니다.
“우선 의원 정수를 늘린다는 것도 우리가 뭐라고 설명을 해도 현재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라든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면 의원 정수 늘리는 방법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 저는 국민들이 납득 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명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명분이 의원 정수 늘리면서까지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겠는가? 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난달 30일 열린 정개특위 회의에서 ‘의원정수 확대 반대’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협상 초반 요구사항의 최대치로 착점을 두고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는 오는 7일 꾸려질 ‘선거제도개혁 소위’에서의 논의 과정에서 머지않아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첫 전체회의가 지난달 24일 오전 국회에서 심상정 위원장 주재로 열려 심 위원장이 여야 간사들과 손잡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현재 정치권 안팎에서는 선거제도 개혁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라 있습니다. 국가와 행정부를 대표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입법부 수장인 문희상 국회의장뿐 아니라 여야 대표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모두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선거제도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를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치권은 선거제도 개혁의 키를 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속내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대응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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