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종로구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열린 ‘한국 정치의 새길, 새로운 틀’ 대화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는 ‘한국 정치의 새길, 새로운 틀-의회정치 발전과 선거제도’라는 주제로 ‘대화모임’이 열렸습니다. 최근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 개혁 방안으로 정치권 안팎에서 ‘핫’하게 떠오른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정계·학계·언론계·시민사회 주요 인사들 30여명이 모여 의견을 나눴습니다. 현역 의원들은 각당의 분위기도 전했습니다. 결국 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골을 넣을 선수들은 국회의원들이므로 이들의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화 자리’에서 나온 얘기라서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각 당의 ‘현재 스코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민주당, 지도부는 ‘찬성,’ 개별 의원은 ‘반대’ 적지않아…합리적으로 설득해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김종민 의원이 내부 기류를 전했습니다. 김 의원은 “지금 우리 당의 지도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하고 대통령도 100% 찬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 의원은 “민주당 의원 중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의원들도 적지 않다”며 “기득권 지키기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에 긍정적인 지도부와 별개로 개별 의원들은 현행 선거제도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손질을 꺼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개별 의원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기득권 지키기’만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의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의원들이 가진 합리적인 의문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기득권 지키기’라고 여당 의원들 매도하기만 해서는 선거제도 개혁 진도가 안 나갈 거라는 진단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이 제기하는 의문에 대해 김 의원은 이런 예를 제시했습니다. ‘정당득표율로 의석수가 결정되는 연동형 비례제가 결과적으로 인물에 대한 표심을 다소 훼손하게 된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제가 국민주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제도가 맞는가’입니다. 김 의원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2:1의 비율로 해서 연동형 비례제를 시행한다고 할 때 비례대표 의석수가 지역구 의석수보다 절반밖에 안 되는데 비례대표쪽에 찍은 표심을 가지고 전체 의석수를 결정하는데 이게 유권자의 정확한 표심을 반영하는 거냐는 문제제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독일처럼 1:1은 돼야 유권자의 표심 왜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 의원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합리적인 반론이나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민주당 의원들은 기득권 주장만 한다’,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상주의자다’ 등 서로를 향한 매도만 남으며 대화가 끊길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 이주영 “선거제도 개편 필요”, 손학규 “연동형 비례제와 대통령제 잘 맞나?”
자유한국당은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밝혔듯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병행 추진하자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자유한국당 소속 이주영 국회 부의장은 “자유한국당은 6·13지방선거에서 엄청난 패배의 늪에 빠졌기 때문에 이 체제 그대로 갔다가는 나락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며 “이제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고,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분권(개헌)을 같이 해야겠다는 입장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지방선거 참패를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미래당도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 분리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선거제도 개편은 사실 쉽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을 대통령제 하에서 했을 때 어떻게 갈 것인가. 선거제도 개편하고 개헌으로 가자고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손 대표는 이어 “선거제도 개편이 꼭 필요한데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을 과연 분리할 수 있을까’가 커다란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다당제가 탄생하는 것인데 다당제가 정치적 안정을 기하려면 연립정부밖에 없다”며 “그런데 대통령제에서 연립정부를 할 수 있는가? 그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의회책임제가 아닌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에서 다른 정치세력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으로, 연동형 비례제와 대통령제가 과연 궁합이 잘 맞는가하는 ‘제도 정합성’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 심상정 “모로 가도 서울 가야”, 시민사회 “민주당 때문에 기회 놓칠까 걱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됐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연동형 비례제가 정의당의 당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거제도와 관련해 입장이 모호한 자유한국당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은 도농복합 중대선구제를 수용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할 수 있다는 게 원내지도부의 입장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는 도시지역은 한 지역구에서 2인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로, 농촌지역은 현행대로 소선구제를 실시하는 제도입니다. 새 선거제도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와도 농촌 지역 의원들의 기득권은 유지되는 방안입니다. 심 의원은 “한마디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제도마다 장단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에는 바꿔야한다”며 선거제도 개혁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이날 민주평화당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아서 입장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자리의 다수 참석자들은 선거제도 개혁에 있어서 결국 여당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심상정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은 민주당의 결단이 없으면 힘들다”고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호소했습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는 “대통령과 민주당 인기가 좀 있다고 해서 2020년 총선에서도 이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면 큰 일 난다. 민주당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더구나 자유한국당도 수용적인 태도를 보내고 있는데, 이 좋은 기회를 민주당 때문에 놓칠까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선거제도 개혁의 여정에 있어 또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자유한국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으로 합의했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 대한 정개특위 배제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정의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심상정 의원은 “그동안 정개특위에서 비교섭단체가 배제된 적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교섭단체 여야동수(민주 9, 자유7, 바른2)로 정개특위를 다시 구성하지 않으면 특위 위원 명단을 낼 수 없다며 버티고 있습니다. 김종민 의원도 “이로 인해 정개특위가 장기표류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 각 당 주요 의원 등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로의 개혁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선거법 개정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처음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도입을 언급한 지 20년만에 가장 뜨겁게 달궈진 선거제도 개혁의 불씨를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 잘 살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글·사진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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