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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금 늪으로 들어가고 있다

등록 2015-10-23 18:31수정 2015-10-24 10:39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9) 역사전쟁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훗날 ‘박의 전쟁’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역사 전쟁’이 시작되었다. 최후통첩 없는 선전포고였다.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기습전이자 정공법이다. 목표를 정하면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는 점은 김영삼 대통령과 닮았다.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인 두 사람의 스타일은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전차군단을 이끌었던 ‘조지 패튼’을 연상시킨다. ‘사막의 여우’라 불린 독일의 ‘에르빈 로멜’과 더불어 현대 기동전의 영웅이었던 패튼은 전쟁을 제대로 이해했던 군인이었다. 그는 “전쟁은 단순하고, 즉결적이고, 비정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너무나 빠른 진격으로 독일군을 추월해 군대를 적진 속에 갇히도록 만들어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우리 뒤에 처진 독일군은 우리 포로”라며 거침없이 나아갔다. 위대함은 때로는 무모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전쟁·정치·스포츠 모두 ‘대담함’이 승패를 가른다.

“꼭 이겨야 하는 역사 전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선봉에 섰다. 김무성 대표는 “우리나라 교과서는 모두 우리나라는 못난 나라라고 가르친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배우는 중·고교 교과서를 봐라. 교과서에는 ‘악마의 발톱’을 교묘하게 숨겼지만 선생님들이 보는 교사용 지도서는 좌편향으로 만들어졌다. 검정도 안 거친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좋은 것이라고 가르친다”며 “검인정 교과서 8개 중 7개가 모두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못난 나라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단언했다. 또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 90%가 좌파”라며 “좌파의 사슬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국정 교과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위험한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18일 서울 강남에서 학부모들과 만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두 분의 선대가 친일·독재에 책임있는 분들이다 보니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배경이고 발단”이라고 규정하고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무슨 말로 포장해도 국민들은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가 친일과 독재의 가족사 때문에 국정 교과서에 집착한다고 믿고 있다”고 거칠게 공격했다. 한국에서 이념 전쟁은 끝나지 않은 ‘100년 전쟁’임을 절감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J.R. 실리가 통찰한 대로 ‘역사는 과거의 정치고, 정치는 현재의 역사’인 것이다. 한국에서 역사 교과서는 아직도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로 남아 있다.

교과서를 보고 크게 놀라다!

김무성 대표가 권한 대로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로서 교과서를 읽어보기로 했다. 지금 내 앞에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세 권이 놓여 있다. 교학사, 금성출판사, 미래엔 출판사판이다. 미래엔의 ‘교사용 지도서’도 함께 놓여 있다. 교학사판은 김무성 대표가 8종의 검인정 교과서 중 유일하게 ‘우파’ 교과서로 인정한 교과서다. 진보 진영에서도 ‘뉴라이트’의 영향을 받아 ‘역사 왜곡 및 우편향이 심하다’며 검정 취소와 불매운동을 전개했던 바로 그 교과서다. 나머지 두 권의 교과서는 국정화의 빌미(?)를 제공한 이른바 좌파 교과서다.

나는 교과서를 읽어보고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세 교과서 모두 근현대사 비중이 50%나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근현대사가 이렇게 많이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대사는 자료 불충분으로, 현대사는 자료 과잉으로 쓸 수 없다”던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C.P. 페기의 말이 떠올랐다. 정작 더 놀란 것은 온 나라를 ‘이념 전쟁’으로 몰고 갈 만큼의 큰 차이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예상보다는 교과서들이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 정도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관점’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밋밋한 차이를 보일 뿐이었다. 적어도 ‘뉴라이트’ 사관의 영향을 받았다는 교학사 교과서에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건국’이라고 돼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정부 수립’으로 되어 있었다. 교학사는 ‘냉전 질서의 형성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금성출판사는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미래엔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 전쟁’으로 모두 통일되어 있었다. 나는 ‘건국’이라고 표현한 교과서가 있어도 좋다고 본다.(논쟁할 가치가 충분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 청문회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인 ‘5·16’에 대해서도 세 교과서 모두 ‘군사 정변’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교학사는 ‘5·16 군사 정변과 반공 체제의 확립’, 금성출판사는 ‘5·16 군사 정변과 유신 체제’, 미래엔은 ‘5·16 군사 정변과 자유 민주주의의 시련’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이제 와서 누가 ‘5·16 혁명’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아버지 시대에 대한 평가를 물을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는데 적어도 5·16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내려진 것이다.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티브이 광고에 ‘유관순은 없었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유관순은 2014년까지 8종의 교과서 중 2종은 기술이 안 되었고, 2종은 사진 없이 이름 등만 언급되었다”는 내레이션이 나오기에 찾아봤더니 세 교과서 모두 사진과 함께 설명을 달았다. 금성출판사는 간단하게 기술했지만 교학사와 미래엔은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확인해 봤더니 다른 교과서들도 모두 다루고 있었다. 교육부의 궁색한 변명은 2014년까지는 그랬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광고는 국정 교과서의 정당성이 아니라 ‘검정의 효과’를 보여주는 광고인 셈이다.

새누리당이 펼침막으로 내걸었던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내용에 대해 찾아봤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세 교과서 모두 주체사상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었지, 가르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미래엔의 ‘교사용 지도서’에도 객관적 서술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김무성 대표는 (좌파 교과서가) “악마의 발톱을 ‘교묘하게’ 숨겼다”고 했고, ‘학자들이 뽑은 최악의 역사 왜곡 사례 15선’을 발표한 ‘자유경제원’의 전희경 사무총장도 “‘콕 집어 밑줄을 긋지는 못하지만’ 다 읽었을 때 대한민국은 자랑스럽구나 하는 긍정의 사관이 자리잡을 수 없게 하는 맥락의 문제는 더 크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차이를 갖고 이렇게 온 나라를 뒤집어놓으면서까지 ‘국정화’를 밀어붙일 필요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검정을 강화하면 충분한 일이다. 나라에 대한 자긍심은 교과서로 배워서 얻는 게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갖게 되는 것이다.

충분한 우군을 확보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떠밀려 마지못해 참여한 교육부
선뜻 동의 못하는 보수 언론
전선에선 이탈자들이 늘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단일’ 교과서일 뿐
‘올바른’ 교과서가 될 수는 없어
결국 1년 만에 졸속으로 만든
교과서에 대한 모든 책임은
보수 진영에게 굉장한 부담 될 것

‘전략 실행’과 ‘메시지 관리’에서 허점

입만 열면 시장·경쟁·자율을 외치는 보수와 자유경제원이 왜 정치와 교과서는 경쟁을 거부하고 ‘독점’이 좋다고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이 믿는 사상과도 맞지 않는 태도다. “국정화는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제도”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김재춘 교육부 차관을 전격 경질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바람직한 것은 자유발행제”라는 소신을 밝혀 신념도 의지도 부족한 것이 확인된 황우여 교육부 장관 등을 억지로 떠밀다 결국 (국정 교과서 발행을) “영원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는 군색한 변명을 내놓게 만들었다. 싸우기도 전에 이미 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법적으로는 국정화 추진이 그리 어렵지 않다. 교육부가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하고 만들면 된다. 간단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극적인 회군이 없다면 국정 교과서는 추진될 것이고 1년 뒤에는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바라는 대로 이기는 싸움이 될 것인가는 회의적이다.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국민을 편 갈라서 대통령이 될 수는 있지만 국론을 분열시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이 이슈는 ‘통합진보당’ 해산과 같이 보수 진영이 일치단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보수 진영의 균열은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컨설턴트인 딕 모리스는 선거에서 이슈가 되는 조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대중의 관심사일 것, 둘째,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할 것, 셋째, 찬반이 분명하게 나누어질 것, 넷째,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 등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국정 교과서는 정치적 의제로서 어느 정도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의제의 메신저가 대통령이라면 폭발력 있는 이슈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이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이유는 ‘전략 실행’과 ‘메시지 관리’에서 허점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슈를 성공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담대한 제안일 것, 충분한 우군을 확보할 것, 반대를 두려워하지 말 것 등이다. 만약에 이 싸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충분히 우군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싸움에 나섰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떠밀려서 마지못해 참전한 느낌이고, 보수 언론도 국정화 전쟁의 명분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전방에서 싸우는 새누리당에서는 전선에서 이탈하는 군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형국이다. 정치적 승부사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강점은 ‘대담함’과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이지만 우군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채로 싸움을 하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다. ‘대담한 용기’는 뛰어나지만 ‘치밀한 전략’은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인과의 권력 투쟁에서는 무서운 힘을 발휘하지만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야 하는 싸움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무엇을, 왜, 어떻게 하겠다는 설명을 통한 공감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신념만으로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메시지 관리에도 실패하고 있다. 메시지 관리의 핵심인 이슈 ‘주도성’과 ‘일관성’은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확장성’에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역사 전쟁’을 이끌고 있는 네 명의 메신저인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대표, 황우여 교육부 장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모두 지지를 좁히는 메시지를 양산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반대 여론이 많아지는 것도 메시지 관리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무성 대표는 극단적으로 이념 편향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국정화에 앞장서고 있는데 이는 결국 대선 후보로서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또 하나의 국가보안법이자 사학법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정부·여당이 만들겠다는 ‘올바른 교과서’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정답이 없다. 관점에 따른 견해가 있을 뿐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해서 기억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처지에서 봤다면 기억도 다른 것이다.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어디에서 보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보다는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역사 해석’은 누구도 독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집필진이 만든 교과서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는 없다. 국정 교과서는 ‘단일한’ 교과서일 뿐이지 ‘올바른’ 교과서가 될 수는 없다. 결국 보수 진영의 인사들만 참여하여 1년 만에 아무리 좋은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해도 결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교과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다.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국가다. 이념에 사로잡혀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편 가르는 전략은 선거를 앞둔 새누리당에도 치명적 악재다. 정치의 셈법은 간단하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 것이다. 예외가 없다. 국정 교과서 추진은 지지기반을 분명히 좁히는 일이다. 민생이 어려울 때 정권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의제에 집착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노무현 정부가 잘 보여주었다. ‘국정 교과서’는 또 다른 ‘국가보안법’, 또 하나의 ‘사학법’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헤어 나오기 힘든 늪으로 더 들어가면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회군하는 것이 좋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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