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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독일 축구’ 새누리당 vs ‘영국 축구’ 새정치연합

등록 2015-07-31 18:41수정 2015-08-02 14:03

[토요판] 박성민의 ‘2017 오디세이아’
(13)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브라질 사람들에게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를 고르라고 한다면 2014년 7월9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꽤 될 것이다. 월드컵 준결승에서 주최국인 브라질이 독일에 7:1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언컨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독일 아디다스의 한 매장은 독일이 한 골을 넣을 때마다 10% 세일을 약속했다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70% 폭탄세일의 낭패를 보기도 했다. 브라질 사람들을 더 쓰라리게 한 것은 이 승리로 라이벌 독일이 브라질을 제치고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나라로 올라섬과 동시에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갖고 있던 월드컵 통산 개인 최다 골 기록도 독일의 클로제로 바뀐 것이다. 결승 진출 횟수도 독일이 8회로 브라질을 넘어섰다. 여러모로 지워버리고 싶은 비참한 패배였다. 그 한 경기로 인해 브라질의 ‘아우라’는 사라졌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초에는 축구 하면 브라질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1970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결승전은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브라질 선수들은 모두가 ‘바나나킥’을 찬다는 둥 마치 ‘신계’를 대하듯 외경심을 갖고 브라질 축구를 찬양했다. 월드컵은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당연히 우승하는 거라고 믿던 시절이었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를 앞세운 서독이 요한 크라위프가 이끌던 네덜란드를 꺾고 우승했던 그 경기도 나는 보지 못했다. 내 친구들도 그 경기를 대부분 보지 못했는데도 이상하게 서독 축구에 대해 열광적인 팬이 된 친구들이 생겨났다. 요즘 젊은이들이 메시와 호날두를 두고 논쟁하듯 펠레와 베켄바워를 두고 싸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축구 강국 하면 세 나라만 떠올랐다. 월드컵 3회 우승으로 ‘쥘리메컵’을 영구보관하게 된 브라질, 베켄바워가 이끄는 신흥 강국 서독, 그리고 1966년 우승국이자 ‘축구 종주국’인 영국이었다. 그 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놀랍게도 영국은 그 뒤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이제는 누구도 영국을 우승후보로 꼽지 않는다. ‘축가 종가’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반면 독일은 브라질을 제치고 ‘영원한 우승후보’라는 제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영입된 감독’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은 몰락한 영국 축구를 떠오르게 하고 새누리당은 독일 축구를 떠오르게 한다. ‘전차군단’이라는 강인한 별칭이 보여주듯 독일 축구의 강점은 전자기계 같은 ‘조직력’이다. 상대를 압도하는 체력,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이 독일 축구에는 있다. ‘팀 독일’이라는 일체감, 승리를 향한 집념, 국가대표로서의 자긍심도 다른 나라를 압도한다. 축구에서 조직력이 붕괴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브라질은 잘 보여줬다.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나도 ‘개인 전술’만으로는 체력과 조직력으로 무장한 팀을 이길 수 없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자국 리그가 발전해야 한다. K리그가 강해지지 않고는 한 번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어도 두 번의 기적은 기대할 수 없다. 세계적인 축구 강국은 자국 리그가 강한 나라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국내 리그가 강하더라도 외국인 선수들이 리그를 주도하는 나라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영국은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갖고 있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주도하기 때문에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지 못한다. 독일은 자국 선수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월드컵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다. 차범근이 뛰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독일의 ‘분데스리가’가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 그러나 독일 통일로 인한 재정난으로 유럽 리그의 주도권을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에 내주고 말았다. 비싼 외국인 선수를 데려올 수 없게 된 환경은 독일 선수들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력이 강화되었다.

반면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는 돈이 몰리면서 큰 비즈니스가 되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몰려오면서 영국 선수들은 뛸 기회를 잃어 갔다. 최고의 클럽들인 첼시와 아스널에서는 한때 스타팅 멤버에 영국 선수들이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영국 리그는 강한데 영국 국가대표 축구는 점점 약해져 갔다. 새누리당은 두 번의 대선 실패를 경험한 후 ‘이기는 정당’으로의 진화를 계속해왔다. 새누리당은 독일 축구처럼 ‘조직적 규율’이 잘 잡혀 있다.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같은 중요한 선거의 후보를 결코 외부에서 데려오지 않는다. 지더라도 자기들이 키운 후보들로 승부한다. 당의 중요 의사 결정도 정치인들이 주도한다. 밖에서도 별로 간섭하지 않는다. 보수는 새누리당을 정치적 전위로 인정한다. 역할은 분담하되 힘은 분산시키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0년간 ‘만성적 분열’ 탓에 조직이 붕괴되었다. 분열해서 패배하고 패배해서 분열한다. 선거 때마다 당에서 성장한 사람은 찾아보지도 않고 외부 인사로 눈을 돌리기 때문에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대선 후보가 되고, 서울시장 후보가 되고, 당의 지도부가 된다. 권위가 없으니 리더십이 먹히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당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당을 이끌기 때문에 지도부가 ‘지도력’을 행사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큰 문제는 지도부가 리더십이 없으니 문제가 생기면 당 밖의 사람들에게 해결을 맡기는데 ‘권위’도 없고, ‘경험’도 없고, 당에 대한 ‘존중’도 없기 때문에 당원들이 잘 따르지 않는다.

설사 그 모든 것을 갖춘 실력있는 전문가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다.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은 하면 안 된다. 국내 감독으로 월드컵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전권’을 위임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전권이란 것은 ‘선수 선발’, ‘훈련 방식’, ‘전술 운용’, ‘미디어 대응’ 등과 같이 ‘감독의 권한’을 전적으로 보장한다는 뜻일 뿐이지 협회의 역할까지 맡긴 것은 아니다. 축구협회 조직을 뜯어고치거나 K리그 운영 방식을 국가대표 감독이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김상곤 혁신위’도 당을 대체할 권한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

축구 종주국이지만 몰락해버린
영국 축구 떠올리게 하는 새정치
두 번의 대선 실패 뒤 진화하며
독일 축구처럼 조직적 규율 잡힌
새누리당은 독일 축구 연상케 해

2012년 총선 비례대표 공천 때도
새누리당과 진취성 경쟁서 밀려
최근엔 ‘오픈 프라이머리’를
반개혁으로 모는 것 이해 안돼
혁신위가 길을 잃지는 않았나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당권재민 혁신위’는 1차 혁신안에서 호남지역의 ‘100인 원탁회의’가 당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불공정한 공천제도, 당 정체성 확립, 소통 부재, 책임과 리더십 부재, 일관성 없는 정책과 기준, 계파 분열, 후보의 낮은 경쟁력, 낡은 정당, 다양성 부족, 호남 기득권을 극복할 방안으로 원탁회의가 제시한 8가지 과제를 발표하였다. 새로운 인재 발굴 및 양성, 국민과 소통하는 정책 개발, 당 정체성 확립, 호남 기득권 타파, 민생 중심 정당, 진보개혁세력 연대, 혁신안 실천, 공천 시스템 개선 등이다.

혁신안 실천은 과제라고 할 수 없고, ‘진보개혁세력 연대’라는 새롭지 않은 혁신(?)안이 들어간 이유도 논외로 하고, 내가 가장 주목해서 본 것은 혁신위가 거듭 강조하고 있는 ‘당 정체성 확립’이었다. 정체성은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성을 획득한 ‘당의 나이테’인데 이것을 외부 인사들이 어떻게 확립해준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정체성은 당 내외에서 치열한 논쟁과 투쟁을 거치면서 시대 상황에 맞게 계속 재정립되는 것이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논쟁의 방식과 문화도 정체성에 녹아 있다.

혁신위의 설명을 들어보자. 6차 혁신안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누구를 위하여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이 정체성의 핵심이다. … 당권재민 혁신위원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자 한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혁신의 핵심이다.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으니 정책기조가 흔들리고, 지도부의 리더십이 붕괴되고, 지지도가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바뀌어도 길을 찾을 수 없었다. … 정체성 확립을 위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념은 ‘민생제일주의’이다. … 지금 이 순간부터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오로지 민생제일주의로 통합된 ‘민생파’만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생복지정당’으로 이행하기 위해 ‘민생연석회의’를 구성하고 ‘민생부문 최고위원’과 ‘민생본부장’이 참여해서 ‘민생의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민생복지전문가’를 우선 공천하고, ‘민생복지 당직’을 강화하고, 민주정책연구원 상근부원장 중 1인을 ‘민생부원장’으로 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당명도 ‘민생당’으로 바꾸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다.

민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집요하게 싸우지 않은 탓이 물론 크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의도나 의지가 아니라 ‘실행력’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도 선한 것은 아니다. 정치에서 진정성은 무능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뭘 할 것인가’, ‘왜 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목표를 가졌더라도 권력을 운영하는 방법을 모르면 유능한 정부는 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국민들은 국가경영능력에서 진보보다는 보수를 더 신뢰하고 있다. ‘정부를 유능하게 운영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국민이 믿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혁신의 핵심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직에 대한 ‘충성’에서도 새누리당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명제는 논쟁이 필요한 주제이지만 한국의 보수는 진리처럼 받아들인다. 세계적인 스포츠 구단에서 뛰는 선수들도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에 저항하지 않는다. 메시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지만 ‘바르셀로나의 메시’이지 ‘메시의 바르셀로나’가 될 수는 없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팀에는 팀과 일체감을 갖는 열광적이고 충성된 팬들이 있는데 이들은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선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브라질·영국 축구 몰락에서 배울 것

국가나 팀처럼 정당도 그런 조직이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당에도 그 당과 자신이 운명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믿는 지지층이 존재한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정당에 충성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혁신이 성공하려면 혁신위 역시 당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새누리당은 당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개인을 위해 당을 희생한다. 독일 축구가 강한 것은 국가를 위해 뛴다는 자긍심이 다른 나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이나 영국 축구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은 ‘돈맛’에 물든 선수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새누리당에 ‘혁신 경쟁’에서도 진다는 사실이다. 2012년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이자스민과 조명철의 영입에서 보듯 새누리당이 훨씬 더 진취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최근 김상곤 체제의 혁신위가 당의 정체성과 무관한 ‘2000원짜리’(새누리 책임당원 당비), ‘1000원짜리’(새정치연합 권리당원 당비) 선거용 종이당원을 모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은 눈감고 정당의 정체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오픈 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제)를 일언지하에 반개혁으로 몰아가는 태도와 논리에 너무 놀랐다. 혁신위의 반대 성명은 이론에다 현실을 꿰맞추려다가 궤변으로 빠진 전형을 보여주었다. “오픈 프라이머리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좋은 의도이며, 당내 공천갈등과 계파갈등을 일부 해소할 수 있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빈대를 잡기 위하여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누가 초가삼간을 태우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또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공직선거법상의 사전선거운동을 전면 폐지”하자고 해놓고 “전면 폐지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라며 무엇을 주장하는지 헷갈리게 해놓더니, 반대한다는 성명의 결론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선결과제를 늘어놓았다. 도무지 찬성한다는 것인지 반대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논리였다.

더 놀란 것은 양당 독과점 체제를 깨고 다당제로 가기 위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면서 의원 정수를 369명으로 늘리자고 한 주장이다. 이미 선관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200인과 100인으로 하자는 안을 내놓았는데도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의원 수를 늘리자고 한다면 스스로 ‘기득권위원회’를 자처하는 꼴이다. 어렵지 않은 것을 혁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일단 선관위 안에 맞춰 지역구 의석을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 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먼저다. 혁신위가 자신들에게 위임되지 않은 일을 하려다가 결국 길을 잃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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