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 등 ‘사법 리스크’를 안은 채 지난해 6·1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설 때부터 ‘방탄용 출마’라는 비판을 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논란을 빚은 지 1년여 만에 의원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19일 밝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방탄 민주당’이라는 공격에 주력하는 여권의 전략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아울러, 빠르면 이번 주중 인선을 마무리할 ‘김은경 혁신위원회’의 본격 혁신 작업에 앞서 이 대표 자신부터 쇄신의 ‘걸림돌’을 걷어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은, 사전에 언론에 배포된 원고엔 없는 갑작스러운 내용이었다. 준비한 원고 사이에 별도로 끼워넣은 이 대목을 현장에서 읽으며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년 넘도록 검경을 총동원해서 (이재명의) 없는 죄를 만드느라 관련자들 회유·협박에 국가 역량을 소진하고 있다. 저를 겨냥해 300번 넘게 압수수색을 해온 검찰이 성남시, 경기도 전·현직 공직자를 투망식으로 전수조사하고 강도 높은 추가 압수수색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깜짝 발표’에 국회 본회의장 민주당 의석 쪽에선 박수가 나왔다. 이런 발표는 공식 출범을 앞둔 당 혁신위 활동의 물꼬를 트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 본인이 불체포특권을 쥐고 있는 것부터 혁신 대상 아니냐. 이 걸림돌을 제거해야 혁신위의 명분이 선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혁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우원식 의원), “국민과 정의의 승리를 믿는다”(정성호 의원)고 평가했다. 혁신위는 20일 김은경 위원장 주재로, 인선이 끝난 일부 위원들부터 모여 첫 회의를 연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의 앞에는 아직 수사 단계인 사건들이 줄지어 있다.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정자동 관광호텔 개발사업 특혜 의혹 △정자동 한국가스공사 부지 개발 특혜 의혹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등이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행태가 역대급 광풍 수준이라, 우리 쪽은 어떤 사건이 되든 조만간 무조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칠 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이 대표는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국회로 넘어올 체포동의안 문제를 측근들과 진지하게 상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 쪽은 “검찰이 ‘뭐라도 걸려라’ 하고 드잡이를 하니, ‘뭐라도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방탄 프레임’이 여당의 유일한 총선 전략이니 그걸 조기에 깨고 무력화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연설 중 “(집권 여당에) 빌미를 주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신과 당의 발목을 잡은 방탄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검찰 수사에 당당히 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 비주류 일각에선 “이 대표가 검찰 수사 추이를 지켜보고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은 게 아니냐”는 의심 섞인 시선도 나온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대장동·위례 사업 개발 특혜 의혹 등은 이미 이 대표가 불구속 기소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들은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청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에선 ‘만시지탄’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당이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뒤늦게 나선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헌법(제44조)이 보장하는 권한이어서, 국회 회기 중이라면 이 대표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처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검찰이 향후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가결 당론’을 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약속 이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 따라서 그 절차 내에서 행동하겠다는 말씀은 기존에 하셨던 말씀보단 좋은 얘기 아닌가 싶다. 다만 그걸 어떻게 실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