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요청 이유설명을 하고 있는 동안 잠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강희철 |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았지만, 가결 정족수 미달로 국회 담장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찬반 표의 분포가 깊고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결과에는 무엇보다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냉정한 평가가 담겼다. 오랜 표단속과 총력 여론전에도 불구하고 다수 이탈표를 막지 못했다. 정치 언어가 신뢰와 공감을 얻으려면 ‘듣는 이에 대한 존중’과 ‘말하는 사람의 인격성’이 필수(박상훈 <정치적 말의 힘>)라는데, 이 대표는 너무 멀리 벗어났다. 구속영장을 ‘사법살인’이라 부르고, 검찰을 깡패와 강도에 빗댄 격한 언사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졌을지 의문이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답변(57%)이 ‘유지’(27%)를 압도하고,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응답자(49%)가 반대(41%)보다 많았다는 여론 흐름(지난 24일, 한국갤럽)이 표결 결과와 무관할 리 없다.
오는 말이 험한데 가는 말이 곱겠냐고, 그는 말하고 싶을 것이다. “지방자치 권력을 사유화한 ‘시정농단 사건’”, “국민의 신뢰를 극단적으로 훼손한 ‘내로남불, 아시타비’의 전형” 같은 구속영장의 일부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법조인들도 지적한다. 구형 때 어울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가령 12·12 및 5·18 사건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논고문에는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반국가적·반역사적 범행” 같은 최상급 수사와 단정적 평가가 다수 들어 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달랐다. 구체적 혐의사실을 나열한 뒤 “~한 자로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는 자임”으로 간결하게 끝난다. 이번에는 재판도 하기 전에 논고부터 앞세운 모양새가 됐다.
“내로남불이 법률상 구속 사유는 아니지 않나. 구속영장은 판사 앞에서 피의자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원래 법률 요건에 맞게 건조하고 담백하게 쓴다. (전엔) 감정이 드러나는 세간의 용어를 법정 안에 들여오지 않았다. 지휘부가 사전에 걸렀어야 한다.”(고검장 출신 변호사) 그렇다고 이 대표의 거친 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지만, 이 대표의 실존적 환난은 지금부터다. 검찰은 머잖아 그를 기소할 것이다. 대장동과 위례 재개발, 성남에프시(FC) 세 건에 대해서다. 구속영장에 포함되지 않았던 정진상씨 등 측근을 통한 수뢰 혐의는 ‘배임의 동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소 단계에서 포함할 공산이 크다. 재판이 집중심리로 진행되면 이 대표도 스스로 기록을 파악하고 거의 매주 법원에 나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불구속 상태로 무죄를 다투는 피고인이라 재판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재판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 때 2년 동안 재판에 시달렸다”며 ‘맷집’을 자랑한 적이 있지만, 이번 사건은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 “2개 특수부가 거의 1년 동안 진행한 재수사라 기록이 수만쪽 이상일 것이다. 1건만 유죄가 나도 정치생명이 끝날 내용들인데, 추가 기소까지 예고돼 있다. 제대로 대응하려면 법원 출신 시니어 변호사부터 주니어까지 최소 5~6명 이상으로 팀을 만들어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변론 비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충실한 방어권 행사는 전적으로 변호사 비용에 비례한다.”(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
게다가 수사 중인 사건이 3건(백현동·정자동·대북송금)이나 된다. 이 사건들도 결국엔 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앞서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이 오는 3일부터 시작된다. 이 대표의 심적 고통과 시간·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게 돼 있다.
정치적으론 민주당 의원들의 인내심이 관건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방탄 논란을 무릅쓰고 ‘기소 시 당직 정지’ 규정(당헌 제80조)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손질했다. 하지만 이 대표 재판과 수사가 민주당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당 지지율이 계속해서 국민의힘과 격차를 벌리며 우하향 곡선을 그린다면 사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에 가까이 갈수록 의원들의 손익계산은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재명을 얼굴로 내세워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비켜 가기 어렵다. 이번 이탈표는 예고편에 해당한다.
이재명의 묵시록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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