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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민주, 검찰 탓만 말고 민생 우선으로 가치 재정립하라”

등록 2023-06-12 05:00수정 2023-06-12 10:48

위기의 민주당 하 ― 전문가 제언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대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대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공공의 의제를 다루고, 모든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리는 게 정치인데, 어떻게 정치가 도덕과 무관할 수 있나. 불평등, 착취, 지배, 폭력 등 사회의 불의를 타파하는 진보의 언어는 가장 강렬한 도덕적 언어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진보는 기득권 사회의 부패를 걷어내자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요구받는 도덕적 기준이 보수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부패한 진보’가 잘 된 사례가 있나.”(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위기 원인을 진단하고 혁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겨레>가 11일까지 인터뷰한 외부 인사들은 “정치와 도덕이 왜 별개냐”고 입을 모았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투기 의혹’이 잇따라 터진 뒤 당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우리 당은 도덕주의가 너무 강하다”며 논란의 중심에 선 이들을 감싸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외부 인사들은 민주당이 도덕성 위기를 성찰하는 한편, 가치의 확장, 강성 지지층과 적절한 거리두기, 총선 공천 혁신이 뒤따라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덕성 위기의 기원부터 성찰해야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김남국 의원 의혹이 터졌을 때 ‘민주당이 도덕적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것 자체가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젊은층이 김남국 의원 사태에 등을 돌리게 된 건 그가 ‘불법’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평소 얘기하던 것과 드러난 실상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라며 “배신감과 박탈감, 허탈감 때문에 비판하는데, 거기 대고 자꾸 ‘불법이 아니다’라고 하는 건 물타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는, 민주당 전체의 건강함과 무관하게 그저 돌발적으로 벌어진 일일까?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정치학)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 “돈봉투나 코인 의혹은 이번 민주당 위기의 ‘촉발요인’일 뿐이다. ‘기저요인’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민주당 스스로 도덕적 권위를 훼손한 데 있다. ‘조국 사태’에서 민주당은 도덕성이 붕괴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왜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는지 모르고 있다. 왜 정권이 교체됐는지 참회록을 쓰고,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분석도 비슷했다. “‘조국 사태’부터 도덕성 시비가 빚어졌는데, 민주당은 유권자들을 전혀 살피지 않았다.” 국민들은 이미 지난 정부 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민주당에 실망했고, 지난 대선 패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민주당 스스로 인정하고 철저히 성찰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아직 ‘검찰 탓’을 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진욱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검찰과 경찰을 핵심 통치기구 삼아 ‘합법적 억압’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민주당의 도덕적 해이를 심화하는 환경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정권이 도덕적 문제를 정치도구화하는 게 1차적인 문제지만, 민주당이 정치에서 벌어진 일을 도덕과 무관하다며 검찰 탓을 할수록 정권의 정치도구화 전략은 더욱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치의 재정립 최근 드러난 민주당의 위기는 도덕성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그 근본엔 ‘가치 상실’과 ‘무능’이 있다. 지난해 6월 페이스북에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반성문을 연재했던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인 이인영 의원은 당시 “우리는 왜 졌는가”라고 물으며 “민주당의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했었다. 일례로,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당시 후보의 슬로건 ‘나를 위해 이재명’은 ‘준비된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이 먼저다’(문재인 전 대통령) 같은 역대 민주당 대선후보 슬로건과는 차이가 있다. 김윤철 교수는 “적어도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모습은 보였다. 정책적으로도 중산층과 서민,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과 혼, 정신이 있었는데 대선을 거치면서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금의 유권자 지형은 크게 분화돼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지향해온 가치의 ‘회복’만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난해 대선·지방선거 패배 뒤 민주당이 평가위원회 격으로 만든 ‘새로고침위원회’는 18~69살 유권자 3천명을 온라인으로 조사해, 이들이 6개 그룹으로 나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민주당 지지 가능성이 큰 쪽은 전통적 진보인 ‘평등·평화’(37.7%) 그룹과, 강성 지지층과 성향이 유사한 ‘급진적 개혁 우선’ 그룹(6.3%)이었다. 국민의힘 지지 가능성이 큰 쪽은 ‘자유·능력주의’ 그룹(21.5%)으로 분석됐다. 단순하게 보면 민주당은 40% 초반, 국민의힘은 20% 초반 지지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민주당에 유리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위기 관련 외부 인사 제언
더불어민주당 위기 관련 외부 인사 제언

하지만 나머지 40% 가까운 유권자가 무당층·스윙보터층이다. ‘친환경·신성장’ 그룹(18.8%), ‘반권위·포퓰리즘’ 그룹(9.3%), ‘민생 우선’ 그룹(6.4%)이 그들인데, 새로고침위원회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이들을 더 많이 흡수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들까지 끌어안으려면 “당의 노선, 정책, 태도, 조직과 운영에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40% 유권자와 엇박자를 내 왔다. 가령 20~30대 저소득 남성이 많은 ‘반권위·포퓰리즘’ 그룹과 지방 비정규직 여성이 많은 ‘민생 우선’ 그룹은 ‘월세 지원’을 매우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지만, 민주당의 관심은 청년 주택 구입 지원과 부동산세 인하였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30년 전과 지금은 삶의 구조도, 가치관도, 시스템도, 다르다”며 “거리에 나와 민주화 투쟁을 하는 것이 진보성이 아니다. 지금의 진보성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라고 말했다.

“시민 참여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민주당의 또 다른 문제는 강성 지지층이다. 강성 지지층·당원이 전당대회와 대선 후보 경선 등 당내 선거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에 올라탄 지도부·후보가 그들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는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민주당은 점점 민심과 동떨어져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강성 당원과 친명계 의원들이 혁신 방안으로 강조하고 있는 ‘당원권 강화, 대의원제 폐지’는 대중의 관심과는 거리가 있다. 새로고침위원회 조사에 응한 응답자들은 ‘민주당 이미지 제고에 있어 시급한 과제’(복수응답)로 “정치 행태에서 신뢰 회복”(42.4%)을 압도적으로 많이 꼽았고, “미래지향적 정책 구현”(28.9%), 민생정책의 전면화(27.9%) 등을 그 다음으로 원했다. “당원 중심성 회복”은(11.9%)로, “팬덤정치와의 결별”(23.1%)을 꼽은 이의 절반도 안됐다.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인 민주당의 현실은, 여권의 어떤 악재에도 30%대를 넘지 못하는 당 지지율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성 지지층과 유사한 성격을 띠는 유권자는 전체의 6.3%(급진적 개혁 우선 그룹)로 가장 비중이 적다. 그런 ‘소수의 큰 목소리’가 당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다. 최근의 사태를 두고서도 개별 의원들의 산발적인 문제제기만 있을 뿐 자성의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강성 지지층이다.

신진욱 교수는 “이제 일반 시민의 정치 직접참여 자체를 미덕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으로선 자기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을 안고 열성 지지층과 척을 지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회색 지대’로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당원이나 기층의 목소리를 높이는 게 더 많은 민주주의는 아니다. 숙의 민주주의, 즉 더 성숙한 논의와 토론을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게 중요하지, 직접 민주주의 그 자체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정치 팬덤 문제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공천 혁신이 필요하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과제를 풀어나가는 건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압도적 다수 의석일 땐 “의원들의 수준이 이전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여의도 안팎에서 나오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17대 총선 당시 152석을 차지한 당시 열린민주당 의원들은 ‘탄돌이’라는 놀림을 당했고, 초선 108명은 중구난방하는 모습으로 ‘백팔번뇌’라고 불렸다. 2007년 대선 이듬해 치러진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153석)에 이명박 대통령의 뉴타운 개발 공약에 힘입어 당선된 의원들이 많아 ‘뉴타운돌이’라고 불렸다. 다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엉겁결에 운 좋게 당선돼 제 역할을 못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준비되지 않은 이가 당선됐다는 건, 공천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례위성정당을 포함해 민주당이 180석을 얻은 지난 총선도 비슷했다. 김형준 교수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아주 특수한 위기 속에서 국민들이 집권 여당에 힘을 실어줬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180명인데, 그렇게 상황적 요인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과정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남국 의원이다. 김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호 집회를 주도한 ‘개싸움국민운동본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민주당 전략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뒤 당 미래사무부총장을 지냈다.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 비교적 당선가능성이 높은 지역구(경기 안산 단원을)에 ‘무혈 입성’하고, 주요 당직까지 맡게 된 것이다. 신율 교수는 “강성 지지층과 결합된 지금의 정치 구조에 충실한 사람들이 주로 공천을 받은 탓”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미 ‘권리당원 50%, 일반국민 50%’를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으로 내년 총선 후보를 뽑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지금의 정치 구조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 공천받을 여지가 좁은 셈이다. 이 때문에 당 안팎에선 혁신기구에 전권을 주고 공천 혁신까지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한 초선 의원은 “민주당이 공천을 통해 지향하는 원칙도 총체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당을 뜯어고친다는 심정으로, 절대적 권한을 부여받고 혁신위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는 “혁신 대오를 꾸리고 청산 대상을 제대로 청산해야 한다”며 “정치할 자질이 없는 사람, 정치를 수단화해 사익을 추구할 출세주의자를 공천해선 안된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당과 정치 활동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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