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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강성당원이 ‘청원’ 좌지우지…지도부는 그 위에 올라타기만

등록 2023-06-09 06:00수정 2023-06-09 16:23

위기의 민주당 (중)―소통과 멀어진 당원 청원 시스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은 당원의 의견을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수용하겠다며 당원 청원 시스템인 ‘국민응답센터’(이하 당원 청원) 누리집을 신설했다. 권리당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 글엔 당 지도부가 직접 답변한다. 당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도입하면서 “문자폭탄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당과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8일 현재까지 올라온 청원은 모두 142개로,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어 답변된 청원 6개, 그러지 못한 채 종료된 청원 114개, 진행 중인 청원이 22개다. 이틀에 하나꼴로 청원이 올라온 당원 청원은 기대했던 대로 소통 시스템으로 작동했을까?

‘정청래 의원의 행안위원장 내정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같은 동지에게 내부총질을 일삼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을 규탄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청원의 제목이다. 22개 가운데 18개가 이렇게 친이재명계 의원들을 감싸고,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강성 당원들의 요구다. 답변된 청원도 당헌 80조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 시 당직 정지’ 삭제 요구 2건,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에 비판적인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 출당 요구 등으로, 진행 중인 청원과 성격이 다르지 않다. 당원 청원이 강성 당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이런 목소리는 당의 주요한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헌 80조 개정 청원 2건은 5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첫 청원으로, 지난해 8월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 안에선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이재명 대표가 검찰에 기소될 경우 당헌에 따라 직무가 정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는데, 당원들이 이를 개정하라고 나선 것이다. 당헌 80조 개정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직무 정지 시기를 ‘기소 시’에서 ‘1심에서 금고 이상의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로 완화하는 내용이 전당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의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당 안팎의 비판에, 이 조항 자체는 그대로 둔 채 구제할 권한을 당무위원회에 주는 절충안이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당대표가 당무위 의장을 맡기 때문에, 결국 이 대표의 ‘셀프 구제’가 가능하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주요 청원과 당 지도부의 관련 발언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성희롱성 발언으로 당 윤리심판원에서 ‘6개월 당원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최강욱 의원 사례도 그랬다. 지난해 8월1일 당원 청원엔 “당심과 괴리된 결정을 일삼는 윤리위를 규탄한다”는 청원이 올라왔고, 빠른 속도로 동의를 얻었다. 당시 윤리심판원은 최 의원이 청구한 재심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청원이 올라온 뒤인 8월18일 “본인 소명과 추가 자료 제출 기회를 주기 위해 계속 심사하기로 했다”며 결론을 유보했다. 재심 결정은 아직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최근엔 당원권 강화를 명분으로 한 대의원제 폐지가 강성 당원의 주요한 요구다.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불거진 뒤인 4월18일, 당원 청원엔 “돈봉투 사건의 발단은 대의원제에 있다. 이를 폐지하고, 당원 중심의 깨끗하고 공정한 민주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동의한 이는 5만3474명이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청원 동의 마감 다음날인 5월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런 사실을 소개하며 대의원제 폐지를 촉구했다. 정 최고위원은 그 전후로도 여러 차례 대의원제 폐지를 강조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당직과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겸직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는다는 당내 지적 때문에 맡으려 했던 행정안전위원장 선출이 불발됐는데, 현재 당원 청원에선 그의 행안위원장 내정을 촉구하는 청원이 5만8천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있다.

‘화력’이 센 강성 당원의 호의와 지지는, 개별 정치인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천을 받는 게 제일 중요한 이들로선 강성 당원의 지원이 절실한 측면도 있다. ‘국민 선거인단 50%, 권리당원 선거인단 50%’를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을 거쳐 총선 후보를 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권리당원은 당비를 6개월 이상 납부한 이들인데, 강성 당원 다수가 권리당원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 안에선 지도부가 청원으로 대표되는 강성 당원의 목소리에 올라탄 결정을 내리면서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민심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당직자는 “강성 당원이 사과하지 말라면 안 하고, 누구를 때리라면 때리는 게 도덕이 돼서 국민 전체를 보지 못한다”며 “‘개딸’이라는 강성 당원에 기대 정치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지향점은 곧 ‘개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도 강성 당원들의 비명계 공격 중단을 여러 차례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론 부족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한 원외 청년 정치인은 “우리 당이 특정 팬덤에 휘둘리지 않는 정당이고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대중을 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리더의 전략인데 (이 대표는) 단순히 말로만 자제하고 있지 않냐”고 했다.

이우연 엄지원 조윤영 임재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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