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각) 예정된 그리스 국민투표의 향배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국민투표 취소 가능성을 일축하며 유권자들에게 거듭 ‘부결’을 촉구하고 나섰고, 이에 맞서 채권단도 국민투표 이전에 협상 재개는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국가부도를 맞은 최초의 선진국’이 된 그리스의 비극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리스의 운명은 처음부터 양면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유로존 가입으로 그리스 국민의 실질 구매력은 하루아침에 뛰어올랐다. 독자 통화를 버린 대가다. 2010년 구제금융에 들어간 그리스가 위기 극복에 실패한 배경으로는 허약한 수출산업 기반과 세계경제 침체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기댈 수 있었던 환율 특수를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든 요인도 작용했다. 유로화에 통합돼 환율이 고정돼 있는 탓이다.
과도한 복지가 비극을 불렀다는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정부 복지지출 비중은 21.3%로, 유로존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재정 부담을 키운 원인은 분수에 맞지 않는 복지혜택이 아니라, 상류층의 광범위한 탈세로 인한 만성적인 세수 부족에서 찾는 게 옳다.
무엇보다 그리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과도한 긴축프로그램을 강요한 채권단의 책임이 크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5년간 채권단의 요구대로 공무원연금과 임금을 삭감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왔다. 그럼에도 2009년 2643억달러이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944억달러로 26%나 쪼그라들었다. 그리스에 제공된 구제금융 2520억유로 가운데 92%는 독일과 프랑스의 민간은행 등 채권자 주머니로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영국의 <가디언>이 지난 30일 공개한 채권단 내부보고서는 현행 구제금융 방식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보고서는 그리스 정부가 부가세 인상, 연금 삭감 등 채권단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더라도, 2030년 부채가 여전히 국내총생산의 118%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채권단도 자신들의 주장이 억지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라 안팎의 진보적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차라리 그리스가 ‘그렉시트’(유로존 탈퇴)를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안정적인 국제금융질서 구축과 세계경제의 동반 성장을 위해서라도 횡포에 가까운 현행 구제금융 방식의 문제점은 재조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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