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혹한 조건 밀어붙이자 불만
‘IMF 최대 지분’ 미국, 견제 나선 듯
‘IMF 최대 지분’ 미국, 견제 나선 듯
그리스 구제금융의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채권단이 그리스의 부채를 경감해주지 않으면 구제금융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가혹한 조건의 구제금융안을 밀어붙인 독일의 독주에 대해 미국 쪽이 견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국제통화기금에서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한 고위 관계자는 15일 기자들에게, 부채 경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제통화기금은 이번 구제금융에 유럽 쪽이 기대하는 164억유로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파이낸셜 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기금 사용을 승인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의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부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완전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명백히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리스를 구제하려는 새로운 프로그램은 “우리 기준을 충족해야 할 것”이라며 “그 중 하나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느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독일 등 유럽 채권단 쪽이 경감해주지 않는다면 국제통화기금은 구제금융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채 경감은 그리스 쪽의 핵심 요구였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부채상환 장기유예 등만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런 입장을 이번 구제금융안이 합의된 유로존 정상회의에서도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입수한 3쪽짜리 국제통화기금 보고서는 “그리스의 부채는 향후 2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로 치솟을 것”이라며, “대규모의 부채 경감을 통해서만 그리스는 금융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부채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런 견해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부채 경감을 거부하는 구제금융 협상안을 밀어붙이자, 결국 구제금융 참가 거부 의사까지 밝힌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의 이런 입장은 그리스 부채 경감을 주장해온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리스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가진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도 독일 쪽에 양보를 촉구해왔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16일 유럽을 방문해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비롯해 유럽 각국 재무장관들과 만난다.
국제통화기금이 이번 구제금융에 불참할 경우, 독일은 심각한 정치적·재무적 문제를 겪게 된다. 독일 관리들은 국제통화기금이 불참하면 의회의 구제금융안 승인이 어려워지고, 860억유로의 구제금융 자금 조성에도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은 보고서에서 유럽 쪽이 그리스 채권의 원금과 이자 상환을 모두 30년 이상 유예해주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리스는 유럽 국가들이 보유한 채권에 대해 이미 2023년까지 상환유예를 받았는데, 국제통화기금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2053년까지 갚지 않아도 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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