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그리스 사태가 파국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고, 불안감이 커진 그리스에선 이미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사태)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를 둘러싼 긴장 수위는 당분간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정부가 26일 밤(현지시각) 채권단이 제시한 새로운 구제금융 프로그램 수용 여부를 다음달 5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한 데 이어,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이 국민투표 때까지는 구제금융 연장을 거부한다고 분명하게 못박았기 때문이다. 즉각 구제금융 연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빌린 돈 15억5천만유로 상환일인 이달 30일 디폴트를 피하기 어려운 처지다. ‘빚 갚아야 하는 날’과 ‘새로운 대출조건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날’ 사이엔 일주일의 공백이 있다.
그리스 사회는 커다란 혼란에 휩싸였다. 불안한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27일 하루 새 자동현금입출금기 3분의 1 이상에서 현금이 바닥나기도 했다. 현재 그리스 은행들은 중앙은행의 긴급유동성지원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처지다. 하루 인출한도 및 외국 송금 제한 등 일시적으로 강력한 자본통제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그리스 정국이 급작스레 혼돈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정국 혼란이 격화하는 등 그리스 사태는 기약없이 마냥 이어질 수 있다.
설령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더라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그리스에 빌려준 돈을 떼일 위험에 놓인 유럽 주요 금융기관들이 해외 대출(투자) 회수에 나설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익스포저(위험노출 정도)가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에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커져,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던 엔저 현상 등 환율 압박 부담이 되레 다소 줄어들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언제든지 대형 화재로 옮겨붙을 수 있는 게 국제금융시장의 분명한 속성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 경제는 오랜 경기부진으로 기초체력이 예전보다 약해졌을뿐더러, 재정·금리·환율 등 꺼내들 만한 정책수단 여건도 녹록지 않은 편이다. 가뜩이나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마당에, 그리스 사태가 우리 경제의 상처를 덧내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방심하지 말고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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