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로 최악의 부진을 보인 홍명보 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3일 발표했다. 내년 1월 아시안컵 대회를 준비해야 하고, 취임 1년도 안 된 홍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다.
홍 감독 유임도 하나의 선택일 수는 있다. 2010년 월드컵 이후 감독이 세 번이나 바뀌면서 국가대표팀이 방향을 잃은 채 장기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전철을 다시 밟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홍 감독의 임기는 1년이나 남아 있고, 그에게 기대를 거는 국민도 여전히 적지 않다.
문제는 이번 결정이 잘못에 대한 분석과 진단, 반성의 결과가 아니라는 데 있다.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은 이날 “이번 월드컵 준비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패 원인을 이제야 찾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상태에서 근거도 없이 홍 감독을 더 믿어보겠다는 것이니 ‘주먹구구’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홍 감독을 유임시킴으로써 축구협회가 자신의 책임도 함께 모면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월드컵 참사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엄연한 실패다. 세계 축구가 원톱 대신 투톱이나 스리톱으로, 포백 대신 스리백과 전원 수비로, 점유율 중시 대신 빠르고 강한 연결로 흐름이 바뀌는데도 한국 축구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낡은 전술만, 그것도 상대에 따른 임기응변도 없이 고집했다. 축협 기술위원회는 알제리 등 상대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확보하지 못했고, 홍 감독은 뚜렷한 전망도 없이 스스로 밝힌 원칙까지 어겨가며 입맛에 맞는 선수를 중용했다. 그런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야말로 개선과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그런 뒤에야 2018년 월드컵까지 4년간 책임과 권한을 쥐고 대표팀을 이끌 감독을 찾을 수 있고, 실력을 갖춘 지원체계를 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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