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숨진 40대 여성이 살았던 전북 전주시 한 빌라 현관문 앞.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저귀 박스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전북 전주시 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 옆에는 아들로 추정되는 4살 안팎 미등록 아동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2014년 엄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로도 위기가구의 비극적인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 체계를 강화한다고 밝혀왔지만, 여전히 긴급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지 못한 탓이다.
경찰에 따르면, 고인의 사망 원인은 지병으로 인한 동맥경화로 추정된다. 주검에서 담석도 발견됐는데, 생활고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집에서 발견된 아동은 며칠간 식사를 제대로 못해 쇠약한 상태였고, 현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를 벌인 바 있는데, 이 아동이 ‘병원 밖 출생’으로 명단에서 누락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사고의 징후를 사전에 감지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공과금을 두달 이상 체납한 개인 또는 가구를 전국 각 지자체에 통보한다. 고인은 건강보험료 56개월치를 비롯해 가스비, 빌라 관리비 등을 수개월째 못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7월 관할 주민센터가 추린 위기가구 발굴 대상자 87명에 포함됐다. 하지만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직접 방문했을 때에도 상세 주소(빌라 호수)를 몰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가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로 사각지대를 없앤다고 하지만 현장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제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숨진 여성이 속한 주민센터에선 위기가구 발굴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단 한명뿐이었다. 지난해 수원 세 모녀 사건과 신촌 모녀 사건에서도, 위기가구로 발굴하고도 소재지와 연락처 등을 제대로 파악 못해 비극을 못 막았다. 시민단체 분석을 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위기가구로 발굴된 이들 가운데 공적 서비스로 연계된 이들은 12%에 그친다. 정부도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우선 담당 인력·예산부터 확충해야 한다. 또 ‘발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지, 취약층을 지원하는 복지제도의 문턱이 여전히 높은 것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선별 복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복지 사각지대를 좁히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