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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식 약자복지, 복지 확대인가 퇴행인가

등록 2023-09-10 18:30수정 2023-09-11 02:38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지난달 29일 윤석열 정부는 ‘알뜰 재정, 살뜰 민생’이라는 부제를 단 2024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재정 정상화”를 위해 2024년 예산안을 2005년 이래 가장 긴축적으로 편성했다고 홍보했다. 그렇지만 “국민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에는 제대로 과감하게 투자”하겠다고 호기롭게 밝혔다.

정부의 호기로운 선언처럼, 긴축예산을 편성한 와중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확대한 것이 눈에 띄었다.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고 불리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13.2%(21.3만원) 인상하고 기준 중위소득 기준을 높여 지원 대상을 늘렸다. 지난 5년 동안(2017~2022년) 생계급여의 인상분이 19.6만원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4년 예산안의 이런 대목은 전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이후, 시민사회와 학계는 지나치게 낮은 생계급여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4조 제1항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계속해서 제기해왔다. 이런 비판을 고려할 때, 생계급여를 높이고, 대상을 확대한 것은 의미 있는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향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이번 예산안 전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국민의 안전한 삶은 한두가지 제도의 개선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놀라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경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한 원인 중 하나는 성장이 공적 복지의 보편적 확대를 동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인식은 2010년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을 계기로 공론화되었다. 무상급식 찬반에서 시작된 논쟁은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라는 한국 복지국가의 기본 원칙과 관련된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둘러싼 명시적 합의는 없었다. 그러나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을 공약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하고,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박근혜 후보가 무상보육, 보편적 기초연금 등을 공약하면서 한국 사회는 정당의 이념과 관계없이 ‘보편 복지’를 지향한다는 암묵적 합의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2018년 보편적 아동수당을 도입한 것도, 현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당 강령의 기본정책 중 첫번째 항목으로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한다고 적시한 것도, 이런 보편적 복지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정부의 2024년 예산안은 2010년 이후 ‘보편 복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를 깨고, 한국 복지국가의 방향을 약자 중에서도 엄격하게 선별한 약자만을 위한 협소한 선별주의로 전환하겠다는 ‘공식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대규모 부자감세로 정부 스스로 재정역량을 감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극빈층 지원을 늘린다는 것은 중산층을 위한 공적 복지의 정체·축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산층이 주 대상인 육아휴직 급여와 부모급여를 부분적으로 확대하는 등 여전히 보편주의 잔향이 남아 있다. 그러나 보편 복지가 보편 증세와 큰 정부를 수반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감세와 긴축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보편 복지는 국정운영의 기조가 될 수 없다. 영국 대처 정부의 사례에서 보듯 감세와 긴축은 복지의 보편성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정책 수단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약자에 대한 지원정책의 일관성도 없다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더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며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취약계층의 고용지원 예산을 삭감했다. 취약계층 중에서도 엄격한 ‘빈민 자격시험’을 통과한 취약계층만 선별해 지원하겠는 윤석열식 약자 복지를 환영할 수 없는 이유이다.

수십만 비수급 빈곤층이 기초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또한 광범위하다. 이러한 현실에 눈감고 약자 중에서도 약자만을 선별해 지원하는 윤석열식 복지를 복지 확대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윤석열식 퇴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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