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를 주도했다가 정직 징계를 받고 최근 경남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팀장으로 발령이 난 류삼영 총경이 3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사직 기자회견을 마치고 사직서를 취재진에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지난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총경회의)에 참석한 총경들에 대해 보복 인사를 하고 있다. 회의를 주도했던 류삼영 총경은 정직 3개월 징계에 이어 최근 총경 아래 계급인 경정급이 맡아온 112상황팀장으로 발령났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또 다른 총경은 영국주재관에 최종 합격했으나, 경찰청이 현 주재관의 임기를 연장하는 꼼수로 파견을 막았다. 이 총경에게 주재관 선발에 필요한 서류를 내준 경찰청 담당 과장 역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고 한다. 참으로 치졸한 행태다. 휴무일에 일선 서장들이 모여 경찰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게 뻔한 경찰국 신설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류 총경은 “경찰 중립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며 지난 31일 사직서를 냈다. 그는 “보복 인사의 배후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니라 더 위”라며 대통령실을 겨냥했다. 행정안전부에 신설되는 경찰국은 정치권력에 대한 경찰의 종속을 심화시킬 게 분명해 일선 경찰과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지난해 7월26일 전국 경찰직장협의회가 주도한 ‘경찰국 신설 반대’ 국회 입법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이 9시간여 만에 20만명을 돌파할 정도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경찰의 집단행동을 엄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경찰국 신설을 강행했다. 총경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잇따른 보복 인사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 2월 정기인사에서 빠진 총경회의 참석자들을 최근 시도청 112상황팀장으로 대거 발령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총경 복수직급제 도입으로 기존 인사 원칙에 변화가 필요했다”며 보복 인사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윤 청장은 지난해 ‘이태원 참사’ 당시 고향 근처인 충북 월악산 캠핑장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잠이 들어 경찰의 초기 대응을 제대로 지휘하지도 못했다. 그는 야당 의원의 음주 여부 추궁에 “주말 저녁이면 나도 음주할 수 있다”고 항변했는데, 주말에 술 마시고 잠들어 참사가 일어난지도 모르는 경찰청장보다 경찰의 독립성 훼손을 걱정하며 의견을 나눈 일선 서장들을 국민은 더 신뢰할 것이다. 참사를 겪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이 장관과 윤 청장 등이 인사권을 행사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경찰을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권력의 지팡이’로 만들려는 보복 인사를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