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지난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 뒤 논의 결과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의 경찰서장(총경)들이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등에 반대하는 회의를 열자, 경찰청이 이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하고 현장 참석자 56명에 대한 감찰 및 징계에 착수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장 회의를 “부적절 행위”로 규정했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에는 귀를 막더니, 이제는 인사권을 동원해 논의 자체를 봉쇄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에는 온·오프라인으로 총경급 189명이 참여했다. 행안부가 경찰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속도전을 펴자,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만든 자리다. 이들은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통제는 역사적 퇴행”이라며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회의 결과 보고 일정까지 잡았다가, 회의 도중 돌연 ‘강제해산’을 명령하고 참석자들에 대한 대대적 징계를 예고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윗선’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검찰과는 사뭇 다른 대응도 논란이다. 전국 검사장·평검사 회의가 여러차례 열렸지만 불이익을 받은 이는 없다. 최근 수사-기소 분리법안 관련한 검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현장 상황을 책임지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잘못된 법이 잘못된 절차를 통해 통과됐을 때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말할 의무’가 검찰에만 있을 리 만무하다.
경찰은 ‘치안 유지’라는 목적 아래 국민에게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다. 1991년 경찰이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경찰청으로 독립하고, 국가경찰위원회가 경찰을 통제하도록 한 이유다. 현장 치안 책임자인 총경급 간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경찰 중립성 확보가 그만큼 정당하고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이들에게 거침없이 징계 카드를 꺼내 드는 모습은 ‘경찰 길들이기’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김대기 실장은 이날 “경찰이 검수완박으로 가장 힘이 셀지도 모르는데, 견제와 균형이라든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경찰국 신설을 두둔했다. 경찰의 민주적 통제 역사를 3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궤변일 뿐이다. 총경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대대적 징계는 권력에 의한 ‘경찰 장악’의 예고편이라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