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나랏돈 받아본 청년인데요

등록 2021-03-28 13:50수정 2021-03-29 02:09

조기현 | 작가

아직도 간간이 청년수당이나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방송이나 인터뷰 제안이 들어온다. 내가 청년수당을 받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청년수당은 청년의 활동을 취업·창업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다양한 진로 이행을 지원하는 현금 지급 정책이다. 정책에 참여한 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 여전히 내가 분배 효과를 ‘인증’해줄 좋은 화자로 여겨지는 듯하다.

내가 분배의 효과를 ‘인증’하는 것이 정책 홍보로만 끝날까 우려되기도 했지만, 분배에 대한 더 활발한 논의로 이어지길 바라며 몇 번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다.대개 핵심 질문은 이렇다. 그 돈을 어디에 썼는가? 그 돈을 써서 어떤 결과물을 냈는가? 이런 질문이 주가 되는 이유는 현금 지급 정책에 대한 보수언론과 세간의 비난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은 ‘사지 멀쩡한 사람에게 왜 지원하냐’고 반발하고 있고, 청년들이 나랏돈을 ‘탕진’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는 불신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질문 바탕에 청년 혹은 분배받는 사람을 향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는 셈이다. 나는 그런 불신의 대상이 되는 불편을 꾹꾹 참으며 결백을 증명한다.“저는 돈을 밥값으로만 썼고, 책이라는 결과물을 냈어요.”

분배에 대한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청년 당사자에게 ‘허용’되는 발언은 이 정도처럼 느껴졌다. 그 외 발언은 대개 편집되기 일쑤였다. ‘아직’ 세상은 분배를 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그렇다고 미디어가 없는 말을 지어냈다는 건 아니다. 나는 나랏돈을 탕진하지 않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결백을 주장하는 발언만 조명될수록 분배에 대한 다양한 논의보다 기성세대가 신뢰할 수 있는 ‘청년 이미지’만 남는다. 문제는 그런 이미지가 청년에게 작동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나랏돈을 ‘탕진’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청년은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지으면 더 본질적인 질문을 나누지 못한다. 돈을 ‘탕진’하는 청년이 있다면 왜 그런 행동을 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면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되었는지 살펴볼 수 없다. 단지 개인의 의욕만을 문제 삼으며 청년 혹은 분배받는 시민에 대한 불신이 더 조장될 뿐이다.정말 ‘탕진’과 ‘도덕적 해이’가 걱정이라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비정상이라는 낙인과 감시가 아니다. 그보다 분배받는 시민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탕진’과 ‘도덕적 해이’는 열심히 살아도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란 보장이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정한 노동시장이 유지되는 세상을 어떻게 불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더 활발해지는 분배 이슈 때문이다. 재난은 지금 당장 새로운 분배가 필요하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생활 안정을 위한 각종 사회수당이나 재난지원금,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사회적으로 필요한 활동에 소득을 보장하는 참여소득 등 자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풍성해졌다. 모두 목적이나 규모, 지원 대상이 다르다.

공통점은 공공이 직접 현금을 지급한다는 사실이다. ‘탕진’과 ‘도덕적 해이’가 발생될까 걱정이 뒤따른다. 이런 걱정을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꿔보자. 공공은 어떻게 시민과 관계 맺을 것인가? 분배받는 시민을 어떻게 인정하고, 무엇보다 시민이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 것인가? 공공과 시민이 서로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현금 지급과 더불어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가? 이런 질문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어떤 분배 방식을 택하느냐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야 자원을 나누자는 것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를 넘어설 수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한국=현금인출기” 돌아온 트럼프, 앞으로 어떻게 되나 [뉴스 뷰리핑] 1.

“한국=현금인출기” 돌아온 트럼프, 앞으로 어떻게 되나 [뉴스 뷰리핑]

[사설]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이젠 더 이상 기대가 없다 2.

[사설]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이젠 더 이상 기대가 없다

삼성전자 위기론을 경계한다 [뉴스룸에서] 3.

삼성전자 위기론을 경계한다 [뉴스룸에서]

[사설] ‘김건희 특검법’이 정치선동이라는 윤 대통령 4.

[사설] ‘김건희 특검법’이 정치선동이라는 윤 대통령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5.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