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재개발 예정 지역인 한남3구역의 빈 집에 관리구역임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 있고 페인트로 ‘X’자가 새겨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조기현 | 작가
‘당신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요?’
공연 <한남 제3구역: 재개발을 기다리며>를 보기 위해 대기하다 스태프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누구나 별 어려움 없이 답할 수 있을 듯한 질문. 하지만 재개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이 질문을 받으면 좀 심란해질 듯하다. 이주명령서가 떨어지면 당장에 가야 할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어와 이질적인 사회에 정착한 이들에게 이 질문은 더 무겁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한남 제3구역은 대규모 뉴타운 재개발을 앞둔 곳이자 아프리카계, 중동계 이주민들이 대거 모여 사는 곳이다. 질문이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공연팀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남선희, 우주현, 이수민, 조현희)는 곧 사라질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현재 모습을 연극으로 기록하고 기억해보려고 한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배우이자 연출 남선희는 보광동 주민이다. 서울에서 연극을 하면서도 월세 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2019년 이곳에 흘러들어왔다. 그 인연으로 2021년부터 3년째 지역기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보광동이 사라져도 ‘이 이야기는 남았으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 있을까요?”
생애 인터뷰나 지역조사를 바탕으로 주민을 직접 무대에 초대하거나 주민들이 머무는 공간을 무대화한다. 만남의 기록이 희곡이 돼서 배우를 통해 발현되고, 관객들은 쪽대본으로 배우가 되거나 놀이에 참여하며 공연에 함께한다. 올해 이런 공연을 월간으로 진행한다. 2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동네에서 선보이는 ‘월간 연극’이다.
5월 열린 ‘월간 연극’을 보러 갔더니, 동네에서 ‘바라카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김기학 대표가 무대에 섰다. ‘바라카’는 아랍어로 축복을 뜻한다. 그가 바라카 작은 도서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랬다.
2018년 어느 날 이태원 이슬람사원 근처에서 무슬림 친구와 식사하던 중 친구가 전화를 받고 밥을 먹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사원 앞에는 큰 보따리를 둘러멘 부부와 두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예멘 난민이었다. 당시 예멘 난민이 제주도로 들어오자 법무부는 그해 4월30일 제주도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출도제한 조처를 내렸는데, 이 조처가 내려지기 전 제주도를 빠져나온 마지막 가족이었다.
당장 머물 모텔을 찾았는데, 보따리를 멘 이들을 본 주인장은 큰소리를 내며 내쫓았다. 김기학 대표는 난민가정 아이들의 공부방을 만들려고 얻은 옥탑방을 내주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6개월을 살았다. 그들이 그곳에 지내는 동안 더 넓은 공간을 얻어 무슬림 이주 배경의 아이와 엄마들을 위한 바라카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는 처음 스태프에게 받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바라카도서관에서 왔는데, 재개발되면 이주민들이 일도 할 수 있고 주거비도 저렴한 포천의 한 마을로 가려고 해요. 그곳 초등학교 전교생이 26명이고 교사가 23명입니다. 그곳에 이주민 아이들과 가족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보광동에서 이주민에게 품을 내어준 이들은 이주활동가뿐만이 아니다. 6·25전쟁을 겪은 어르신들도 이주민들을 먼저 이해한다. 어르신 중 상당수가 전쟁 시기 피란민으로 내려와 보광동에 정착했다. 살던 터전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심정적으로 헤아리게 된다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더라도, 상실과 정착의 기억은 연결돼 있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할까? 타자에 대한 편견보다 닮음을 먼저 느끼는 노년 시민들의 눈에서부터 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낡고 오래된 보광동이 차이 속에서 타자와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미래를 먼저 감각할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