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 | 작가
며칠 전, 작업실에서 퇴근하던 중 길가에 대자로 누워 있는 취객을 발견했다. 차가 많이 다니는 길가였기에 가장자리로 옮겨주려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는데, 한 행인이 달려왔다. 행인과 함께 취객의 양팔을 잡고 겨우 옆으로 옮겼다. 경찰에 신고하고 기다리는데, 행인이 말했다.
“아무리 세상 바빠도 동포들끼리 이런 일에 무심하면 안 돼요. 동포 맞지요?”
내 작업실은 중국동포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있다.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나도 중국동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중국동포가 아니기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가 곧바로 다른 말을 이어가는 바람에 내 답이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그는 바빠서 뒷일까지 부탁한다며 동포들끼리 이것도 인연이기에 자신이 맛있는 밥 한끼 사겠다고 했다. 마냥 넉살 좋은 그 웃음에 나는 동포가 아닌 티를 내지 못했다. 얼떨결에 동포가 돼서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았다. 그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안부를 살폈다.
생각해보면 동포인지 식별하는 질문을 적잖게 받았다. 특히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나갈 때 중국동포 아저씨들이 “동포야?”라고 자주 물어왔다. 그때 나는 손사래를 치며 “한국인이에요”라고 답했다. 그러고 나면 괜히 입을 오므렸고, 휘젓던 손이 무안해졌다.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며 극구 부인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우리’와 ‘타자’라는 구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듯했다. 질문한 아저씨가 내 마음을 알아챘을까 봐 괜히 눈치를 살폈다.
내국인이었던 친구도 동포라는 말을 매일 들었다고 했다. 몇해 전,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 때였다. 친구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에 머물렀는데, 일하던 식당 사장이 젊은 중국동포여서 유일하게 한국말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같은 동포끼리 술도 먹고 자주 어울리자고!”
동포라는 이유로 환대해준 덕에 친구는 부족함 없이 지냈다. 같이 술 마실 때면 늘 한국과 관련한 잡담을 나눴다. 그는 한국에서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 열심히 미니홈피를 꾸몄고, 이문세 노래들을 모두 챙겨 들었으며,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와 ‘복면가왕’을 즐겨 봤다. 아이들이 점점 한국말을 못하는 게 걱정인, 자신이 밟아보지 못한 한국 땅을 동경한다던 동포였다. 서로가 이방인인 곳에서는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아 보였다.
친구는 내심 그가 한국에 오지 않길 바랐다. 영국에서 그는 동포라는 이유로 한국인을 환대했지만, 한국 사회는 그를 동포라는 이유로 환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 그는 “우리는 같은 한국인”이라고 스스럼없이 동질감을 표했지만, 한국에 오면 자신을 중국인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느낄 터였다. 공통점은 사라지고 차이가 차별이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지 않을까.
온라인에 들끓는 혐오의 말들도 문제이지만, 다문화정책 현장이 중국동포를 대하는 방식도 문제적이다. 한 중국동포는 다문화 행사에 참여하려니 지자체에서 중국 전통의상을 입을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으로 늘 한복을 입었는데 말이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면 한국어와 한국 문화뿐 아니라, 스스로 경계 위의 존재임을 잘 인지해야 하는 걸까. 그게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통합’의 방식이니 말이다.
내가 동포냐는 물음에 소스라친 것과 지자체가 중국동포에게 중국 전통의상을 입히려던 건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타자와 차이에 위계를 두고, 그 위계 속에 타자를 가두려는 것 아닐까. 이런 차이를 다루는 방식이 언뜻 무해해 보이지만, 위계 속에서 차별과 혐오가 자라나는 것도 사실이다. 며칠 전 함께 힘을 합쳐 취객을 옮겼던 동포의 연락을 기다려본다. 그와 맛있는 밥 한끼 먹으며 다시 한번 힘을 합쳐보고 싶은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