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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찰의 위장수사가 허용되는 까닭

등록 2021-03-18 14:12수정 2021-03-19 02:39

권일용ㅣ전직 경찰·범죄학 박사

2007년 12월25일 오후 시간. 교회에서 성탄절 예배를 마친 뒤 가족들과 집에서 파티를 하기 위해 폭죽과 선물을 준비한 우○○(9), 이○○(11) 두 여자아이가 홀연히 사라졌다. 마지막 목격된 장소는 집 근처 ○○회관 공터였다. 밤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찾던 부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였고 대대적인 수사와 수색이 진행되었다. 필자는 이 사건 분석을 위해 당시 경기청 프로파일러들과 함께 수사본부에 투입되었다. 날씨는 매우 추웠고 가족들 그리고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관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애타게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렸으나 아이들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시신이 처음 발견된 장소에 갔던 필자도 현장에 있던 많은 경찰관들과 함께 눈물을 삼켰었다. 이후 이양의 아버지는 6년여간 딸을 잃은 아픔과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범죄의 피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 모두가 입게 된다.

범인은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거짓말로 일관했다.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수사팀의 노력으로 그는 결국 범행을 인정하였다. 그의 거주지에서 압수한 컴퓨터에는 성착취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필자는 그와 마주 앉아 프로파일링을 위한 대화를 진행하였다. 성범죄자들, 특히 아동 성착취물을 포함한 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자들에겐 성적 자극이 어느 정도에서 머무르지 않고 점차 더 왜곡되고 큰 자극을 원한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 아동 성착취물을 보관만 해도 강력 처벌한다. 단순히 성착취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비정상적인 성적 자극을 추구하고, 결국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성범죄를 실행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성착취물 제작·유포 범죄는 초기 신속한 차단과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1년여 전 소위 엔(n)번방으로 불리는 성착취물을 이용한 범죄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 음성채팅 메신저에서는 심지어 ‘초중딩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사이버상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범죄를 찾아내고 차단하는 것은 실무상 상당히 어렵다. 수사기관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획득한 증거는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사회는 성착취 범죄에 대한 논의를 통해 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9월 말부터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는 경찰의 위장수사가 가능해진다. 경찰관이 가짜 신분을 이용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거래 사이트에 접속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허용된다. 법률이 통과되면 가짜 신분을 이용한 수사가 가능해진다. ‘신분 비공개수사’ ‘위장수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가 합법적인 증거로 인정받게 된다. 판매하는 자와 접촉하는 것, 구매하려는 자와 접촉하는 것을 통한 증거수집 모두가 포함된다.

이에 따른 수사기관의 위장 증거수집 남용에 대한 통제조치도 마련하고 있다. 수사 지휘관의 검토와 승인, 수사 종료 시 경찰위원회에서 결과 보고를 받고 합리적 수사에 대한 판단을 하게 하였다. 경찰은 검찰에 위장수사 개시를 할 수 있도록 신청하여 최종 법원이 허가하도록 하는 절차를 통해 위장수사의 합리성을 여러 기관이 함께 판단하여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철저히 감독하고 합법적인 증거수집 절차를 정비해 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위장수사는 함정수사와 구분된다. 함정수사는 범죄 의도가 없는 자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하여 체포하는 포괄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위장수사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범죄 상황에 수사기관이 적극 개입하여 증거를 수집하고 처벌하려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있다.

사법제도의 변화로 국민들은 경찰 수사가 더욱 폭넓고 전문화된 능력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성범죄 전문가를 양성하고 다시는 이런 유형의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찰이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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