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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람_칼럼 읽는 남자] 윤석열 ‘검찰주의’의 어원 / 임인택

등록 2021-01-20 18:05수정 2021-03-05 11:17

임인택ㅣ여론팀장

주요 언어 국가 가운데 일본처럼 나와 남을 경계 짓는 태도가 언어와 함께 발달한 데는 없지 싶다. 특유의, 겉과 속 이중 언어는 그 경계에 선 이들의 언어이기도 하다.

내 쪽(화자와 같은 생명체)이 있을 때와 다른 쪽(비생명체)이 있을 때의 “있다”(이루/아루)가 다르고, 내(쪽)가 하고 싶을 때와 남(쪽)이 하고 싶을 때의 “하고 싶다”(타이/타가루)가 다르며, 내가 남에게 줄 때와 남이 내(쪽)게 줄 때의 “주다”(아게루/쿠레루)가 다르다. 존재하고 욕망하고 나누는 우리네 첫마디부터 그렇다. ‘우리’라는 대명사가 뚜렷한 여러 언어와 달리, 일본에선 그냥 ‘나+들’(와타시+타치)이나 ‘나+나’(와레+와레)다. 사례가 넘친들 일반화는 어렵겠으나 나와 남의 구별은 무의식적 본류로도 보인다.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지지율은 최근 넉달 만에 반토막(30%대) 났지만 막상 일본인들은 스가나 정부를 우리처럼 욕하지는 않는다. 일본인 친구들에게 물으면 “일본인들은 원래 정치 얘기는 잘 안 한다”는 말만 듣는다. 배경이 많겠으나, 집단이 우선하고 개인은 돌출하지 않으며 그래서 반작용으로 은둔(히키코모리)도 극심한 습속과 연결되리라 막연히 생각한다.

검찰조직을 보면 어떤 일본 사회가 떠오른다. 불만 불구하고 나의 편에 대한 투철한 복무와 함께 내 쪽의 언어로 결속된 특질 탓일 거다. 그 정점에 선 말이 “검찰주의”다. “한국의 국가주의 정책이나 제도 중에 일본을 베끼지 않은 게 있겠는가”라는 ‘홍세화 칼럼’이 한 토막 이유를 제시할지언정 “검찰주의”는 일본에도 없는 희한한 ‘족속의 언어’다.

윤석열 총장을 비판할 때도 옹호할 때도 흔히 “그는 그냥(천생) 검찰주의자다”란 평가를 한다. 독해가 참 난감해진다. ‘주의’는 지향하는 신념 내지 체계화된 이론을 뜻해 세상과 대면하는 인식틀 구실을 해왔다. 자본-공산주의, 친미-반미주의, 근래 길항 중인 능력-존엄주의 등등. 세상의 이치란 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어떤 주의는 때로 편리한 ‘체’ 구실을 하지만, 변화하는 현실을 잘라 눕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한계도 보인다. 그렇기로서니 애초 신념이 될 수 없는 걸 신념화하는 일만큼 위험하거나 우스꽝스럽진 않겠다. “검찰주의”가 어느 집 ‘개주의’란 푯말처럼 검찰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겠으나, 틀렸다. “검찰주의자”란 언사에 그들 누구도 분노하진 않으니까. (윤 총장은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2019년 9월 대검 간부들과의 자리에서 “(나를) 검찰주의자라고 평가하지만 기본적으로 헌법주의자다”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검찰주의의 부정은 아니다.)

일본에도 없는 “검찰주의”가 거의 처음 소개된 때가 2003년 이맘때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 한 위원이 검찰조직 개혁 방안을 공론화했고 이에 “검찰조직을 모르는 소리”라는 검찰 내 반박을 전하는 뉴스를 통해서다. 필시 검사들 표현이었을 텐데 당시 “반검찰주의자”로 내몰린 인수위원이 지금의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제각기 용례가 뭐든, ‘현재’의 검찰 생리를 이해하고 조직을 옹위하는 태도가 ‘검찰주의’의 어원인 셈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내가 사는 세상을 규정한다.’ 언어결정론의 구호처럼 사용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정언은 체험으로 알 만하다. 말이 자유롭지 않은 시절 남몰래 담벼락에 썼다 지운 “민주주의”가 겨우 민주주의를 이 세계로 가져왔다. 한때 호환마마보다 무섭던 안기부도 ‘안기부주의(자)’란 말을, 마음먹은 대로 때려잡던 군도, 경찰도 ‘군주의(자)’, ‘경찰주의(자)’란 족속의 말로 시대 변화에 맞서진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선 안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웬디 브라운 정치학 교수는 책 <민주주의는 죽었는가?>에서 탈민주화의 원인으로 기업권력의 정치, 선거의 상업화, 효율 만능의 신자유주의와 함께 사법의 정치화를 꼽았다. “법원들은 제한을 부과하는 기능에서 입법적 기능으로, 즉 민주주의적 정치의 고전적 과제를 실질적으로 찬탈하는 쪽으로 넘어갔다”는 거다. 10년도 전의 진단이니, 일찌감치 서구는 경종을 울린 셈이고 목도했듯 그럼에도 만난 이가 트럼프였다.

여전히 검찰은 나(쪽)와 남(쪽)을 수사할 때의 “수사하다”가 다르고, 하물며 보수부패정권의 4대강과 현 정권 탈원전 때의 “엄정하다”가 다르다.

‘검찰주의’를 배격하지 못하면 ‘법원주의’를 부를 것이고, 세습 양성된 ‘정치 율사’가 ‘법대로’ 기득권에 복무하는 엘리트주의의 신민이 시민의 이름이 되고 말지 모른다. 그러니 더 읽고, 뭉툭한 질문들을 벼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난 한달, 사법의 정치화는 무능한 정치와 어울린다는 임재성 변호사의 ‘판사들의 통치?’ 칼럼부터 사법농단을 반대했던 현역 류영재 판사가 ‘사법의 독립’과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양날개를 설명한 ‘나는 반대한다’까지 때마침 있었다. 그리고 <한겨레>는 ‘칼럼주의’를 표방하며 우리의 질문을 나눌 ‘한칼’을 공모한다.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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