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 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탄식이 들린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처분이 효력정지된 다음 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다 맞고, 동시에 다 틀린 이야기다.
‘정치의 사법화’란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사법부로 권력이 이전되는 경향을 뜻한다. 세계적인 현상이고, 우려스러운 흐름이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선출되지 않는 기구, 이를테면 미국의 경우에는 연방대법원 판사 9명 중 5명에게 수백만 미국인의 삶과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권을 맡기는 모순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사법화된 미국을 비판한다. 19세기 입법국가, 20세기 행정국가에 이어 21세기는 사법국가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법부가 정책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구조가 20세기 후반 유럽에서 보편화되었다고 분석한 책의 제목은 <판사들과의 통치>(Governing with Judges)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부터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대통령 최우선 공약이었으며 여야 합의로 통과된 행정수도 이전 관련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던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수도서울 관습헌법 근거는 <경국대전>’이라는, 조악한 근거로 초대형 정치 문제를 무력화한 희대의 사건. “사법 쿠데타”(국순옥), “제왕적 사법부”(최장집) 등과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그즈음부터 한국 사회 역시 주요 정책이나 사회적 갈등이 법원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증가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낙연 대표의 말 자체는 올바르다. 권력분립과 상호견제를 넘어, 사법부가 비대한 영향력을 갖거나 행사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두가지 측면에서 틀렸다.
첫째는 비판 대상이 틀렸다. 정치의 사법화에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사법’이 아닌 ‘정치’다. 정치의 사법화는 무엇보다 선출된 권력의 무능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다. 고질적인 정당 간 대립 속에서 의회를 통한 원활한 정책 결정이 어렵자, 진보든 보수든 쟁점을 사건화하여 검찰로, 법원으로, 헌법재판소로 달려갔다.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큰 현안에 대한 결단을 정치가 회피하는 것도 정치 사법화의 큰 원인이다. 오래된 사회적 갈등이 결국 사법부를 통해 해결되는 모습은 상례화되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도 예외는 아니다. 낙태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모두 사법부 판단이 나올 때까지 뒤에 숨어만 있었다. 수많은 여성이 처벌의 공포 속에서 낙태를 선택할 때, 위법한 법외노조 통보로 교사들이 오랜 시간 고통받고 있을 때, 선출된 권력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사법부 뒤에 숨기를 즐겨 했던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 하나 나왔다고 정치의 사법화를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거대 여당 대표가 정치의 사법화를 비판하려면, 최소한 무능한 정치의 자기반성이 먼저여야 한다.
둘째는 번지수가 틀렸다. 이 사건은 정치의 사법화가 논의될 사안이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국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된 법률인가? 대통령 주요 정책이었나? 대통령 재가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법무부가 올린 징계안에 대해 재량 없이 승인했다고 한다면 결국 법무부 징계위원회 4명의 판단(심지어 1명은 기권)에 불과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검찰개혁이라는 정책을 위해 검찰 내부 인적 청산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민주적 통제론), 그 수단을 ‘징계’로 삼는 순간 법원의 판단은 필연적이다. 서울행정법원에 한번 가보시라. 피고가 서울특별시장인, 각 부 장관인 징계처분에 대한 사건이 수두룩하다. 천만 서울시민이 뽑은 서울특별시장이 내린 징계에 대해 1년에도 수십건씩 취소 판결이 이루어진다. 민주적 통제를 정치가 아닌 징계로 하는 순간, 또다시 법원에 칼자루를 쥐여준 꼴이다.
법원 판단에 대해 구체적 쟁점을 비판하고 문제 삼을 수는 있다. 필요한 일이다. 특히 징계 절차에 대한 이번 서울행정법원 판단은 상급심 판단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판사들이 정치를 한다며 ‘정치의 사법화’ ‘사법 쿠데타’를 이 사건에 연결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법개혁은 필요하지만,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