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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나는 반대한다 / 류영재

등록 2021-01-04 04:59수정 2021-01-04 14:07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

‘사법의 독립’과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란 두 개념은 언뜻 보면 서로 충돌하는 관계 같다. 그러나 위 두 개념은 입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구현을 위해 필수적으로 서 있어야 하는 두개의 기둥이다.

입헌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 스스로 각자의 지배자가 된다. 다수결에 의하여 선출된 자에게 통치 권한을 위임하지만 시민이 만든 헌법과 대의기관이 만든 법률을 위반한 통치는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통치는 다수의 이름을 빌리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함부로 침해할 수 없게 된다. 법치주의는 ‘다스리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을 이용한 지배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시민을 다스릴 목적으로 법을 잘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법치가 아니다. 사람 위의 사람, 즉 지배자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다수에 의한 통치를 법이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은 통치기관이나 다수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헌법이 재판의 독립을 규정하고 법관의 인사를 보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사법의 해석과 적용은 결코 헌법적 가치와 시대정신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은 헌법과 법률 안에서 작동되어야 하고, 사법 독립이라는 핑계 아래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선 안 된다. 자의적인 사법권 행사는 법을 이용한 또 하나의 지배에 불과하다.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한 이유다.

결국 입헌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와 공권력 사이의 견제·균형을 통해 ‘지배자’를 만들어내지 않고 시민 한명 한명의 자유와 권리를 온전히 지켜내겠다는 데에 목표를 같이한다.

이러한 개념 아래에서 살펴보면,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다수결 원칙에 의해 구성된 통치기관에 사법이 종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다. 사법은 통치를 규범적으로 통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만일 통치기관이 사법을 자신의 아래에 종속시켜 헌법과 법률에 의한 통제를 받지 않게 되면 그 통치는 다수에 의한 지배로 전락하게 된다. 특정 재판의 결과가 다수의 의사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재판을 한 판사의 인사에 개입하여 재판을 다수의 의사에 맞추겠다는 시도도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될 수 없다. 사법은 다수의 의사로부터도 독립하여 법의 지배를 구현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목적은 자의적 재판권 행사를 방지하고 사법의 책무를 다하게 만드는 데 있지 사법을 통치기관이나 다수의 지배 아래 두는 데에 있지 않다.

재판 및 판결의 공개, 투명하고 개방적인 사법행정제도, 징계 절차 정비를 통한 판사의 책임 강화 등 논의되는 민주적 통제 방안들이 있다. 배심제 도입 및 판사 선출 제도도 민주적 통제 방식 중 하나로서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의 독립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사법을 통치기관이나 다수의 지배 아래 두는 방안을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서 논의해서는 안 된다.

사법농단은 사법부 스스로 조직의 이익을 위해 통치기관인 청와대, 입법기관인 국회와 손잡고 재판을 통치세력에 유리하게끔 이끌고자 개별 재판에 대한 직간접적인 개입을 꾀하거나 판사들을 통제하려 하다가 발생했다. 사법농단의 위헌성은 통치 권한의 행사를 헌법과 법률로 통제해야 할 사법이 오히려 정권의 통치를 보좌하기 위해 사법행정 권한을 남용하여 결과적으로 입법·사법·행정이 합쳐진 거대한 ‘지배권력’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입헌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위반이다.

최근 특정 재판 결과가 다수에 의해 선출된 정권의 통치에 불리한 국면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위 재판을 사법독재라고 명명하고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해당 재판을 한 판사들을 징계하거나 탄핵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들으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 주장에 따르면 사법이 독재하지 않고 민주적 통제를 받기 위해 어떠한 재판을 해야 했다는 것일까. 정권의 통치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재판을 해야 했을까. 그것이 사법 스스로 정권의 눈치를 살펴 정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던 사법농단과 무엇이 다른가.

판사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사법농단의 위헌성을 비판했던 나로서는 작금의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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