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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프로파일러 권일용] 범죄가 다가오는 ‘위험신호’

등록 2020-10-22 15:58수정 2020-10-23 02:38

권일용 ㅣ 전 경정·범죄학 박사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아침. 한 주택가 빌라에 사는 여성이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빌라 입구에서 한 남성이 차를 주차하고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출근하시나 보네요. 저도 이 빌라에 얼마 전 이사 온 사람입니다. 우리는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인데 처음 뵙네요. 지하철을 이용하실 거면 근처까지 태워드릴게요.” 여성은 낯선 사람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남성은 말을 이어갔다. “제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나요? 같은 빌라에 살면서 지하철까지 태워드린다는 거뿐입니다.” 여성은 머뭇거렸다. 이를 본 남성은 “좋은 차도 아닌데 태워드린다고 해서 미안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은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의 호의를 거절하고 낡은 차라고 해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준 것처럼 스스로 죄책감을 느꼈다.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이고 아침 시간에 무슨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남자의 차에 탔다. 그리고 불행한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 이 범죄자는 그 빌라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주 추운 겨울 한 여성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곳은 버스 운행 간격이 긴 장소였다. 한참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여성 앞에 고급 승용차가 섰다. 남성은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길을 안내받은 남성은 말했다. “가는 방향이면 제가 그쪽까지 태워드릴게요.” 여성은 거절하였다. “고마워서 그러니 타세요. 제가 조금 돌아가더라도 큰길로 나가는 곳까지 모셔드릴게요.” 여성은 재차 거절하였지만 남성은 이를 무시한 채 “너무 거절하시면 제가 부끄럽고 죄송하잖아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큰길까지만 모셔드릴게요.” 여성은 ‘이런 대낮에 무슨 일이 생기겠어? 너무 거절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지’ 생각하게 된다. 강호순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가 조심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비난하고 처벌해야 할 사람은 가해자이다. 나중에 수법을 보고 나서 피해자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피해자를 다시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범죄를 저지른다. 대화에 나타난 그들의 수법(범죄 신호) 몇 가지를 분석해보자.

첫째, 범죄 의도를 가진 자들은 전혀 맥락이 없는 상황에서 대화를 시작하며 ‘우리’라는 표현을 반복한다. ‘우리’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사회적 경계를 무너뜨린다. 우리가 같은 빌라에 사는데 처음 뵙는다는 말은 피해 여성이 낯선 사람을 같은 빌라에 사는 친절한 이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심리적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수법이다.

둘째, 요청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약속을 한다. “큰 도로까지 태워드릴게요” “지하철역까지만 태워드릴게요” 이런 말은 피해자들을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셋째, 나의 거절은 계속 무시당한다. 피해 여성들은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한다. 범죄 의도를 가진 자는 그런 거절에 대한 철저한 무시로 일관한다.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겠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나의 거절을 일관되게 무시하고 도움을 주겠다는 건 반드시 의도가 있는 신호로 인식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에게 “좋은 차도 아닌데 태워드린다고 해서 미안해요”와 같은 말로 피해자의 태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죄책감을 유발한다. 더 강력하게 거절하면 호의를 무시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라고 하는 틀을 만들고 ‘부탁하지 않은 약속’ ‘거절을 일방적으로 무시’ ‘나의 태도에 대한 죄책감 유발’과 같은 수법은 성범죄뿐만 아니라 사기범죄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심각한 범죄 의도를 가진 자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다만, 내가 처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맥락을 해석한다면 이런 방식의 범죄 의도를 가진 자들의 수법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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