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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이수정] 조두순보다 더 강한 기억을 남긴 그자

등록 2020-10-15 15:13수정 2020-10-16 02:39

이수정ㅣ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금년에도 여지없이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성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 중이다. 연구뿐 아니라 최근 몇년간은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직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단순한 추행의 피해부터 회복 불가능한 중상해까지 피해의 양상이 천차만별이듯, 가해자 역시도 사회적으로 결핍된 계층에서 권력의 상층부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재범 위험성이 높은 악성 성범죄는 바로 아동에 대한 성도착적 성향에 기인한 성폭력 상습범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할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아마 ‘조두순’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조두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실상 다양한 아동성범죄를 접하다 보면 조두순보다 더 상습성이 강하고 포악한 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출소를 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여덟살짜리 아이들만 골라 여러번 성폭행을 했던 자이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최소 4명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여 강간치상을 저질러 입소와 출소를 반복하였다. 그가 교도소 안에서 참여한 심리치료 과정에서 전문가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여덟살짜리들을 계속 성폭행하는 이유를 바로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인면수심이란 표현이 딱 그대로 들어맞는 그의 범행 동기는 가학적인 소아성애, 바로 그것이었다.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대중에게 털어놓는 이유는 바로 많은 사람들이 잔혹한 범죄를 반복하는 포악한 상습 성범죄자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이런 부류의 범죄자들을 ‘성적으로 포악한 흉악범’(Sexually Violent Predator·SVP)이라고 따로이 명명한다. 미국의 대다수 주에서는 에스브이피법을 입법하여 집행 중이다. 영국과 싱가포르에서도 유사한 법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유럽의 대륙법계 국가들에서도 이런 고위험 성범죄자들에 대한 엄격한 보안 처분을 발견하기는 쉽다. 독일도 오스트리아도 이탈리아도 아이들을 성적으로 공격하는 상습적인 범죄자들이 만기출소하여 국가의 감시 없이 자유롭게 동네를 배회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조금씩 모양새는 다르지만 보호수용법을 운영한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그들로부터 우리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국가 정책의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습성이란 것이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인가? 긴 답을 짧게 요약하자면 ‘그렇다’이다. 성적 취향도 일종의 습벽이라 본다면 과거 출소하여 6개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또 출소하여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여러번의 성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라면 더욱 개과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소아성애 등 성도착적 경향성과 폭력성 억제 불능만큼 위험한 재범요인은 없다. 현대과학은 거기에 대해 전두엽의 실행기능 손상으로 자기조절력을 대부분 상실한 사람이라면 거의 시한폭탄과 같다는 것을 수많은 실험으로써 입증하고 있다.

선진국의 보안 처분은 대부분 부정기형의 조건부 처분을 취하고 있다. 출소 뒤 재사회화의 성공 여부에 따라 보안 처분의 수위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조건부 보호수용에 더해 화학적 거세 약물의 사용을 추가하기도 한다. 이런 정책의 가장 중심에는 대상자의 인권보다는 언제나 잠재적 피해자인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제 우리도 형사정책적 빈틈을 메워야 한다. 범죄자의 부당한 인권침해 논쟁에만 함몰될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우선으로 고려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이제 겨우 두달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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