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용ㅣ전 경정·범죄학 박사
많은 사람이 ‘프로파일러’라고 하면 몇 마디의 범죄자 진술을 통해 심리를 분석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수사 형사들이 고생고생해서 잡아놓은 범인과 몇 시간 면담을 하고 나서 마치 범인의 모든 심리를 꿰뚫고 있거나 검거하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한 것처럼 언론에서 미화하기도 한다. 프로파일러들에게 범죄자 면담은 범행 동기와 범죄자의 성향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되는 마지막 단계의 업무이다.
어느 날 나는 이 마지막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진술녹화실로 들어갔다. 그의 죄명은 ‘살인’이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길을 가다가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무차별 공격하여 저항도 하지 못하는 고령의 노인을 살해하였다.
대략 2000년 초반부터 우리 사회는 ‘분노범죄’ ‘충동범죄’ ‘묻지마 범죄’로 이해되는 강력범죄가 꽤나 발생하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공식적인 법률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나 현황을 분석하기 어렵다. 행위의 결과에 따라 살인이나 폭력, 상해, 재물 손괴 등의 죄명으로 처벌되기 때문이다.
2016년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실 범죄행동분석팀(프로파일링팀)은 실무적 입장에서 분노범죄를 유형화하기 위해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를 시도하였다.
①불특정인을 대상으로 ②특별한 이유 없이 ③과도하고 잔혹한 공격을 하는 범죄를 ‘분노범죄’로 분류하고 유형별 범행 동기와 심리를 분석하였다.
이런 범죄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처한 환경 또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에 대한 분노를 불특정 남에게 표출하는 전치(displacement·옮김)의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서 화풀이를 엉뚱한 곳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서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한다. 남과 비교해 자신의 권리나 자격 등이 박탈되었다고 느끼는 이 감정은 사회적 배제감으로 발전한다. 자신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되었다는 감정이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과의 유대 관계를 단절하게 되고, 누구에게나 공격 행위를 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범죄자들은 이제 남을 시기하는 감정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사랑·우정·성공·인정과 같은 것은 가질 수 없는 것,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친구들과 행복하게 웃으면서 길을 가는 여성들을 공격하고, 자신의 차량 앞으로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를 폭행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사랑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이 우월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
우리가 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같은 경험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갈등을 함께하고 있다. 그 속에서 노력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이타적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린다. 그러나 분노범죄자들은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이 고립이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도 없다. 가족이 함께 살아도 심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단절된 삶이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늘 혼자이다. 친구들을 만나도 표면적 관계 이외에는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자신의 문제를 상의할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다.
면담을 마칠 때가 되면 이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들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고. 그리고 내가 공격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풀이가 되었다고….
나는 항상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를 질문한다. 가장 많이 들은 답변은 바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한 것도 처음이고, 누군가가 이렇게 오래 들어준 것도 처음이다.” 결국 이 마지막 말이 그들의 고립된 심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