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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리의 칼럼] 불가역 / 김훈

등록 2020-05-31 19:29수정 2020-06-28 16:22

2015년 12월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마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2015년 12월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마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1910년 8월22일에 조인된 한일합병조약 제1조는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넘겨준다”였다. 제2조에서 “일본국 황제폐하”는 이 넘겨줌을 “승낙”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에 순종은 고위관리 수백명을 아무런 이유 없이 특진시켰고 이미 죽은 관리, 종친 수백명에게 시호와 훈장을 내려서 명예를 높여주었다. 승진, 승격 인사를 마치고 나서 순종은 옥음으로 말했다. “허약한 것이 고질이 되고 영락이 극도에 이르러 회복시킬 가망이 없으니… 너희들 관리와 백성들은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이로써 조선은 망했다.

순종 실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 합병조약 제1조의 “완전히 또 영구히”라는 일곱 글자는 내 눈앞에 절망의 절벽을 일으켜 세웠다.

나치는 지구상에서 유대인의 존재를 박멸하는 정책을 세우고, 독가스로 몰살해서 전기오븐으로 태우는 방식을 ‘최종적 해법’(the Final Solution)으로 정했다. “최종적”은 돌이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합의’라는 말은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합의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도 들어 있다. 이 글자 10개는 한일합병조약 1조와 나치의 용어를 떠오르게 했다. 인간의 언어와 사유와 시비의 길을 영구히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해결’이 아니라, 그 험난한 앞날의 시작이다. 작가

(*)김훈 작가의 ‘거리의 칼럼’은 매주 월요일치 2면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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