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 공동체인 서울시 종로구 ‘라파엘의 집’은 시각중복장애아동들을 가정과 같은 분위기에서 돌보고자 1986년에 설립되었다. 지난 19일 오후 ‘라파엘의 집’에서 한 아이와 어머니가 손을 잡고 걸어 나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계단에는 ‘국립서울맹학교’, ‘국립서울농학교’라는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청와대가 가깝고 중앙정부의 관공서 건물들이 들어선 이 거리에서 장애인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들에 ‘국립’이라는 명예를 부여하고 있는 이 안내판을 나는 아름답게 여긴다.
복합 중증 장애아동 복지시설 ‘라파엘의 집’은 국립맹학교로 가는 종로구 체부동의 주택가 골목길에 있다. 라파엘의 집은 18년 전에 종로구 인사동 밥집 골목의 전셋집에 들어 있었는데
(<한겨레> 2002년 3월8일치 14면, ‘거리의 칼럼’ 라파엘의 집), 2003년에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지금의 건물을 장만해서 이사 다닐 걱정을 면했다. 이 동네는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의 서촌 구역으로 서울의 유서 깊은 주택가다. ‘라파엘의 집’이 이 마을로 들어올 때부터 마을 주민들은 아무런 저항이 없었고, 장애시설을 이웃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라파엘의 집’ 채미경 과장(사회복지사)은 “인근에 오래전부터 국립맹학교, 국립농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장애인을 낯설어하지 않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채 과장의 말을 믿는다.
‘라파엘의 집’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서울시로부터 7100만원을 보조받았고, 전국의 소액기부자 400여명으로부터 5400여만원을 후원받아서 살림을 꾸렸다. 10여년 동안 매달 5천원이나 1만원을 보내오는 사람도 있고, 계란, 두유, 표고, 얼갈이김치, 감자, 대파, 요플레, 바나나, 화장지, 물티슈, 비누를 보내온다. 동네 유치원 아이들이 과자를 보내오고, 이웃 주민들도 작은 후원금을 보낸다. ‘라파엘의 집’은 주택가 골목에 전광 간판을 내걸었고, 담장을 헐고 대문을 떼어내서 안쪽이 들여다보인다. 이 골목은 장애시설, 불우시설, 임대아파트를 배척하는 한국 중·상층의 악덕이 불치병은 아니라는 희망을 키우고 있다.
18년 전에 쓰다 만 글을 오늘 마무리 짓는다.
작가
※필자의 요청으로 ‘거리의 칼럼’은 오늘로 끝마칩니다.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농학교 입구에 세워진 ‘개교 100주년 기념비’를 김훈 작가가 둘러보고 있다.
국립서울농학교와 국립서울맹학교가 표시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아래에 김훈 작가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