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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문학상을 생각한다

등록 2020-01-30 18:43수정 2020-01-31 15:26

최재봉 ㅣ 책지성팀 선임기자

“이 상 역시 제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소설 쓰는 일에 바치는 수고에 지쳤을 때, 그 일이 허망하고 허망해서 막막해졌을 때 꺼내 볼 겁니다. 그때 그것은 한 가닥 빛으로든, 모진 채찍으로든, 저에게 큰 용기가 되어줄 겁니다.”

작가 박완서가 생전에 낸 책들에 쓴 서문과 후기를 모은 책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 상’이란 다름 아닌 이상문학상. 박완서는 단편 ‘엄마의 말뚝 2’로 1981년 제5회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인용한 대목은 수상 연설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연초부터 문단 안팎의 걱정을 산 ‘이상문학상 거부 사태’와 이 글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 본다. 존경할 만한 선배 작가가 빛과 채찍으로, 용기의 원천으로 소중히 간직하겠노라던 상을 후배들은 왜 거부한 것일까. 그것은 물론 저작권 양도를 규정한 계약서의 부당함에 대한 항의와 질타의 표시였지만, 그 저변에는 문학상 자체의 위상 변화 및 변질이라는 더 본질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상은 작가에 대한 격려이자 해당 작가 및 작품의 문학사적 평가를 위한 근거가 된다. 문학상에는 당연히 명예가 따르고 대부분은 금전적 이득이 곁들여진다. 금전적 이득은 크고 작은 상금의 형태를 띠기도 하며 수상작 출간에 따른 인세 수입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금전적 보상이 많든 적든 문학상은 수상자에게 명예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박완서의 수상 소감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2020년 벽두 후배 작가들의 수상 거부 선언은 이제 그것이 옛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환기한다.

문학상이 예전처럼 명예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까닭은 문학상의 범람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추정치에 따르면 지금 한국에서 시상되는 문학상은 400개 안팎에 이른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매일 한 건이 넘는다. 문인 수가 1만명이라느니 2만이 넘는다느니 하는 말들이 있지만, 그렇다 쳐도 상이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중 태반은 웬만큼 문단 사정에 밝은 이들에게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름 아래 주어진다.

비교적 잘 알려진 상이라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인들을 상대로 한 어느 조사에서는 문학상이 공정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20% 미만의 응답자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문학상들 사이의 변별력이 떨어지고, 심사위원의 ‘겹치기 출연’이 잦으며, 그 결과 소수의 작가가 문학상을 독식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다가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출간해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출판사의 상업적 고려가 더해지면서 상의 취지와 공정성을 훼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문학상을 둘러싼 잡음이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적 권위를 지니는 노벨문학상은 미투 논란 등으로 2018년 시상을 거르고 지난해에 두 사람에게 상을 주었는데, 2019년 수상자로 발표된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가 과거 코소보 사태를 두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영문학을 대표하는 부커상의 지난해 결과도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와 영국의 나이지리아계 혼혈 여성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공동 수상자가 되었는데, 흑인 여성 작가의 첫 단독 수상을 막고자 공동 수상을 택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문학상 수상작을 모은 작품집의 판매 수익을 높이기 위해 작품성보다는 인기 있는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하거나, 충분한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고 널리 알려진 작가의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문학사상은 자사에서 펴내는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2018년 9월호에서 ‘동·서의 문학상 제도’를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인용한 문장은 이 특집의 머리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이상문학상은 과연 이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연초의 수상 거부 사태를 지켜보면서 적잖은 이가 이상문학상을 포함한 유력 문학상들의 상업주의와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박완서에게 그랬듯이 후배 작가들에게도 이상문학상이 빛이자 채찍이 되려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이상문학상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문학상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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