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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순택, 장면의 그늘] 우리 시대의 5·18

등록 2019-02-14 18:06수정 2019-02-15 14:19

어느새 5년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그날의 실체를 향해 ‘겨우 조금’ 다가갔다. 사고를 참사로 치닫게 했던 박근혜는 무너졌다. 세월호는 인양되었다. 하지만 참사의 진실이 인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노순택
사진사

그날은 5월18일이었다. 1980년 5월이 아닌 2014년 5월이었다. 304명의 애달픈 목숨이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지 꼭 한달이 지난 무렵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였다. 하지만 국가의 총체적 무능력이 빚은 구조적 살인이기도 했다. 시시각각 날아드는 속보에 넋을 잃은 채 한명이라도 더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숱한 이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 누구든 발언대에 올라 이 참사의 실체와 해법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혜를 모아보자는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그것은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와 자본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바다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던 공권력이 광장에선 어찌나 유능했던지 ‘세월호 참사 만민공동회’는 시작부터 진압경찰의 포위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오늘은 5·18이다! 세월호 학살은 광주의 학살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땅거미가 질 무렵 다급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울의료원 영안실에 안치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염호석의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경찰이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죽은 이의 몸을 함께 지킬 사람이 절실했다. 친구들과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사태는 이미 끝난 뒤였다.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신마저 빼앗긴 노동자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어떤 이는 주먹으로 벽을 치며 흐느꼈다. 위로 불가능한 무거움이 정지된 듯 흐르는 밤이었다.

그때 다시 속보가 날아들었다.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던 대학생 침묵행진단이 경찰에 포위된 채 연행될 위기를 맞고 있었다. 광장으로 달려갔을 때 청년들은 마구잡이로 연행되고 있었다. 아무런 과격행위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의 저항이 왜 그런 식으로 짓밟혀야 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없을 것이다. 2014년, 우리 시대의 5·18은 자정을 넘긴 채 비명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어느새 5년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그날의 실체를 향해 ‘겨우 조금’ 다가갔다. 사고를 참사로 치닫게 했던 박근혜는 무너졌다. 세월호는 인양되었다. 하지만 참사의 진실이 인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동해 바닷가에서 자결한 염호석의 바람은 평범한 노동자의 삶이었다. 삼성의 옷을 입었지만 삼성의 노동자가 아니었던 그는 하청노동자에게 강요되는 모진 조건을 바꾸기 위해 동료들과 투쟁했지만 삼성의 노조 파괴 공작은 집요하고 잔인했다. 그의 유서엔 노조의 승리를 비는 마음, 장례 일체를 동료들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이 어떻게 경찰과 유족을 돈으로 매수했으며, 시신에 이어 유골함까지 탈취했는지 엊그제야 실체의 일부가 드러났다. 부패 경찰과 기업 간부는 구속되었다. 하지만 진실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죄를 달게 받고 있는가, 용서라도 구하고 있는가.

이제 내게 5·18은 광주의 절규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세월호로도 기억된다. 염호석으로도 기억된다. 빛고을의 학살을 부인하는 지만원의 ‘새빨간 거짓말’이 사실인 듯 유포되고, 그를 숭배하는 국회의원들이 목에 핏대를 세울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1980년 학살의 진실이 명백히 규명되고 응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아닌가. 적당한 거래와 허울 좋은 용서로 덮어둔 진실은 언제든 오염된다. 지만원의 입은 역설적이다. 그자는 ‘어느 해의 5·18’, 세월호와 염호석의 피눈물을 왜 덮어둘 수 없으며 집요하게 규명하고 처벌해야 하는지를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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