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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순택, 장면의 그늘] 그의 싸움은 매번 실패했다

등록 2019-03-14 18:02수정 2019-03-14 19:43

노순택
사진사

올해로 20년째 나는 한 사람의 여정을 사진기에 담고 있다. 작심하고 그랬던 건 아니다. 우연이라 말해야 할까, 필연이라 말해야 할까. 사진이라는 매체는 발길과 눈길이 함께 머무는 곳에서 비로소 성립된다. 발길과 눈길 닿는 곳에 늘 그가 있었으니 나는 그를 사진기에 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포위된 채 짓밟히던 미대사관 앞에서부터 미공군의 무차별 폭격훈련으로 난자당한 매향리에서, 삶을 꽃피우지도 못하고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두 여중생의 영정을 끌어안고 책임규명을 촉구하던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미군의 세계 최대 해외주둔기지 건설 강행으로 마을공동체가 분해된 평택 대추리에서, 살기 위해 올라갔다가 주검으로 내려온 용산참사의 그을린 망루 아래서, 4·3학살의 악몽이 선연한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몰려온 무장경찰 앞에서, 정리해고와 손배가압류로 벼랑 끝에 선 노동자들의 목숨 건 고공농성장 아래서, 세월호 참사 책임규명과 인양을 피눈물로 호소하는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그의 싸움은 더 오래전부터였다. 1975년 4월9일,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관계자들이 판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 집행되고 고문 흔적을 감추려는 자들에 의해 주검이 탈취되던 날 그는 몸을 날렸다. 죽은 자의 몸이라도 지키려고 발악했다. 그날 다리를 다쳐 평생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살벌한 유신의 칼날 앞에서 두렵지 않았을까. 떨었을 것이다. 다만 억울하게 죽음으로 내몰린 이들, 그늘에서 숨죽여 우는 이들을 예수로 섬겨야 한다는 명령이 그를 행동하게 했다. 누구도 아닌 스스로 내린 명령이었다. 이듬해 그는 감옥에 갇힌다.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 시절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그림이 훤하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가난과 차별로 시름하던 농민과 노동자들의 편에서 함께 울고 싸우며 명령을 실천했다. 분단독재가 짓누른 사상과 양심과 통일의 편에서 비타협 투쟁 하며 명령을 실천했다. 누구도 아닌 스스로 내린 명령.

군부독재도 끝나고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그의 눈엔 고통과 폭력이 여전히 아른거린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눈엣가시였던 그가 노무현과 문재인에게도 같은 존재라면, 그가 문제인가 이 세계가 문제인가. 2012년 진압경찰에 떠밀려 강정포구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지난해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투쟁 지원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벌금 대신 감옥으로 걸어들어가 노역형을 살았다. 늙은 신부 문정현.

팔순의 노사제는 이따금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나의 싸움은 실패했다”고 자책한다. 변했다지만, 변함없는 세상이 문정현을 괴롭힌다.

“하지만 나의 싸움은 이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그러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변함없는 세상은 문정현을 주저앉지 못하게 한다.

요즘 문정현은 지나온 삶의 지도, 투쟁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펼쳐놓고 보니 동두천에서 용산, 평택, 군산, 제주와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미국의 전쟁벨트와 맞닿는다. 그에게 군산은 활동의 고향이었으나 외지로 떠도느라 잠시 소홀했다. 돌아와 보니 마을 하나가 기지 확장 탓에 통째로 사라지는데,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이 없다.

잘려나갈 하제마을 600살 팽나무 앞에서 문정현은 다짐했다. 내 여정은 여기서 다시 시작될 거라고. 용도 멈춘 오래된 여인숙에 둥지를 틀었다.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이 싸움의 이유를, 이제 여인숙에서 말하려 한다. 이 싸움은 어찌될까. 애당초 이기고 지고에 매달린 싸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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