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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규의 마주보기] 한겨레 정상회담 보도 어떻게 보셨나요

등록 2018-05-03 18:13수정 2018-05-03 19:41

이종규
콘텐츠1부문장

남북 정상이 ‘평화의 새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4월27일은 참으로 가슴 벅찬 하루였습니다. 지금도 그날 영상을 보면 새록새록 감동이 밀려옵니다.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회담 생중계를 보다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는 분도 있더군요.

<한겨레>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어떻게 기록할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정상회담 당일치(27일)와 다음날치(28일) 1면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아무리 기사가 낱개로 소비되는 디지털 시대라지만, 종이신문 1면이 갖는 힘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1면 논의를 진행하면서, 회담 장소인 ‘판문점’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에 주목했습니다.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런 공간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담은 사진 한 장은 백 마디 글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는 28일치 1면과 맨 뒷면을 하나로 이어 사진을 싣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2개면을 털어 사진 한 장을 싣는 편집은 사상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또 종합일간지 중에서 1면부터 끝면까지 모든 지면을 정상회담 관련 기사와 기고로 채워 ‘정상회담 특별판’을 만든 곳은 <한겨레>가 유일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편집이어서 신문이 제대로 나올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마감하고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보는 건 처음”이라는 편집국 동료도 있었습니다. 결국 인쇄가 늦어져 일부 지역에는 다음날 아침에 신문을 배달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빚어졌습니다. 역사적인 소식을 제때 전하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28일치 1면만큼 파격은 아니지만, 27일치 1면에도 <한겨레>의 지향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판문점이 정전협정이 이뤄진 곳이라는 점에 착안해, 정전협정문 사진을 싣기로 했습니다. 남한이 협정 당사자가 아닌 탓인지 협정문 한글본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기자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어렵사리 문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전협정문만 실으면 평화로 나아가는 현재 상황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침 정상회담 당일 ‘판문점 선언’이 나올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정전협정문과 ‘판문점 선언’을 나란히 배치하되, 판문점 선언 부분은 백지상태로 남겨 두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다음날이면 빈 공간이 ‘한반도 평화 대장전’으로 채워질 거라는 기대를 담았습니다. ‘정전에서 평화로’라는 메시지가 독자 여러분께도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독자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28일치 1면이 후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페이스북에 신문을 펼쳐 놓고 찍은 사진과 함께 “오늘치 신문은 버리지 않고 보관하겠다”는 글을 올린 분들도 많았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독자들의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1988년 ‘민족의 평화통일’을 창간 이념의 하나로 삼아 태어났습니다. 창간호 1면에 ‘6천만의 그리움 끝이자 희망의 시작 백두산 천지’라는 제목과 함께 천지 사진을 큼지막하게 싣고, 창간 이후 상당 기간 제호 자리에 천지 목판 그림을 쓴 것도 창간정신을 구현하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남북은 기나긴 대결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평화의 새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숨 가쁘게 전개될 평화의 여정에서, 늘 <한겨레>의 초심을 되새기며 하루하루 역사의 한 순간을 기록해 나가겠습니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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