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희진의 어떤 메모
<물 전쟁>, 반다나 시바 지음, 이상훈 옮김, 생각의나무, 2003
녹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근대 이전, 염색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지구상에는 녹색과 회색 외에는 별다른 색깔이 없었다. 녹색은 인류에게 가장 친근한 색이다. 그러나 지난주 토요일 <한겨레>에 실린 김봉규 기자의 낙동강 사진, “이 물은 누가 마시나” 기사를 보고 새삼 충격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녹조(綠藻)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낙동강이 수문을 개방하자 진한 초록색 물이 쏟아져 내린 것이다. 낙동강에만 녹조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엠비(MB)정부의 4대강 사업과 녹조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증명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그가 퇴임 후 자전거를 타고 웃으며 강가를 달리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여론은 이러하였다. “모든 범인은 항상 범죄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물 전쟁(Water Wars)>의 저자 반다나 시바는 생태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에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인물이다. 그녀는 원래 핵물리학자였지만 물이 풍부했던 고향 마을이 물을 구하기 위해 4킬로를 걸어야 하는 땅으로 변하자, 마르크스주의 입장의 에코 페미니스트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 일명 3P. ‘민영화, 오염, 영리(Privatization, Pollution, and Profit)’만큼 책 내용과 물 문제의 핵심을 요약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물은 인간의 삶 자체다. 모든 문제에 걸쳐 있다. 예를 들어 징병제냐 지원병제냐 병력 감축이냐는 중요한 국방 정책 논의지만, 현재 더 근본적인 걱정거리는 글로벌 민간전쟁주식회사(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의 존재다. 이들은 전쟁, 쿠데타, 폭력 서비스를 팔고 그 대가로 돈보다는 수원지(水源池)가 있는 땅을 요구한다. 토착민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폭력배들에게 살던 땅을 빼앗기고 물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물은 석유보다 비싸졌다.
물을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은, 인류의 생명과 지구를 소유할 수 있다. 물길을 인위적으로 변경시키는 댐 건설과 운영의 민영화는 핵폭탄급의 대량살상무기다. 아룬다티 로이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간의 지성이 생존 본능을 포기했다”(122쪽).
나는 엠비정부 시절 ‘녹색/성장’이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류를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선전했던 ‘녹색혁명’ 이데올로기를 상기해보니, ‘녹색성장’은 그 카피에 불과했던 셈이다. 산업형 농업은 식량 생산에서 물 공급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녹색혁명은 전통적인 농사, 비로 짓던 농사를 관개 농사로 바꾸었고 그 결과 “비 내리는 가뭄”이 빈번해졌다.
이 책이 2002년도에 출판되었으니, 이후 물에 관한 분노할 만한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가나의 가난한 주민들은 수입의 50%를 물값으로 지출한다(164쪽). 지난 20세기 물 사용량은 인구 증가율보다 2배~2.5배 높았다(30쪽). 해결책은 부자 나라의 정책과 생활 방식에 대한 저항이다. 이 책은 강대국 주민의 소비 행태와 부의 축적을 위한 자연 파괴를 ‘테러’라고 표현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갠지스강에 관한 이야기다(8장). 갠지스는 다른 강처럼 정화 능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세균을 죽여 부패를 방지하는 광물질로 가득 차 있다. 갠지스에서는 콜레라균이 3~5시간 안에 죽는다. 때문에 콜레라 희생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주민의 시체가 버려지고 수천명이 목욕하는 강물을 힌두교도인들은 안전하게 마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223쪽). 사실이냐고? 사실이다. 이것은 현대 미생물학이 증명해야 할 과제지,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그들을 신기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부록도 알차다. 부록 1은 갠지스강을 부르는 108가지 이름들이고, 부록 2는 환경공학을 전공한 옮긴이가 댐 건설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와 환경단체의 주장을 비교해서 소개하고 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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