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단지 돌리는 사람

등록 2016-08-19 20:38수정 2016-08-19 20:40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복거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1996

지난 총선 즈음 관련 기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3월쯤 <한겨레>에 김종엽이 쓴 “총선 캠페인 하나를 제안합니다”였다. 그의 요지는 택배 기사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일 이후로 온라인 구매를 미루자는 것이다. 작은 아이디어지만 큰 생각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서 감동받은 기억이 난다. 선한 마음이 낳은 상상력이다. 대개 상상력은 머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군대 문제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20년 전 출간된 복거일의 산문집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를 읽게 되었다. 그의 지성으로 왜 이런 글들을 쓸까 하는, 새삼스런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매년 ‘비명(碑銘)을 찾아서’를 쓸 수 있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내 인생 목표 중 하나는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완전정복’하는 일이다. ‘보수 논객’ 복거일에 대한 평가는 훌륭한 후대에 의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나를 포함, 한때(?) 그는 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다. “내 마음은 늘 소수에게로 끌린다”(작가 후기)는 그를 생각하며, 대한민국에도 ‘보수 사상가’가 있었다고 자부하고 싶은 것이다. 예전에 한 매체에서 그를 보았는데 여전히 단정하였다. 두 가지 이야기가 그답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선장의 ‘탈출’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라며 “선장이 아주 이기적인 행동을 했다면 자신은 인간에 대해 절망했을 것” 그리고 현재 암 투병 중인데 병원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 중에 “혼잡한 거리에 문득 피는 꽃”(35~37쪽)이라는 전단지 돌리는 노동에 관한 글이 있다. 1920년대 서구 사회에서도 간판을 몸에 두른 ‘인간 광고판 샌드위치맨’이 있었는데, 그들은 전단지 돌리는 사람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임금은 같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단지 받은 일의 귀찮음을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덮였다”는 서양 격언에 비유한다. 우리는 그 작은 선행조차 지옥인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도보로 10분. 재래시장과 상가가 메우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거만하게 말하면, 긴장과 짜증, 죄의식이 나를 괴롭힌다. 전단지 돌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아직도 현금 오만 원을 펄럭이며 신문 구독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 교회 전도, 창고 대개방 세일, 헬스클럽 광고, 음식점 개업…. 전단지를 빨리 없애야 그들의 노동도 일찍 끝날 텐데, 의외로 내게는 전단지를 주지 않는 사람도 꽤 있다. 두 손에 든 물건과 내 행색이 잠재 고객조차 될 수 없는 아줌마라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성실한 노동자다.

쓰레기통이 없어서 주고받은 전단지가 바로 앞에서 뒹구는 민망함, 안 받으려고 걸음을 재촉할 때의 긴장, 내 갈 길을 방해한다는 피해의식이 들 때의 짜증, 전철역에 도착해서야 두 장씩 받는 사람도 있을 텐데, 라는 뒤늦은 죄의식… 여기가 끝이 아니다. 나는 왜 사소한 일로 머리가 아픈가. 성격 탓까지. 전단지는 은근한 가시다.

거리에서의 노동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와 피시(PC)방 밤샘 일은 저임금 알바 중 하나다. 가출한 이후 ‘원조교제’와 성산업에서(‘도’) 외면당한 10대 소녀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녀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알바가 꿈이다. 나더러 길거리에서 전단지 돌리는 사람이 있으면 꼭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수십 장을 그냥 버리고 싶은 유혹, 받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분노, 춥고 더운 날씨의 어려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귀찮아한다는 비참함이 일이 끝난 후에도 계속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상상력은 지구 밖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았던 곳을 생각하려는 마음이다. 전단지를 기꺼이 받아주는 작은 선행은, 그들의 노동 상황에 대한 큰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37쪽)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우리는 정말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나 [강준만 칼럼] 1.

우리는 정말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나 [강준만 칼럼]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2.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윤석열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3.

윤석열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계엄부터 재판관 흔들기까지…헌법이 구타당하는 시대 [세상읽기] 4.

계엄부터 재판관 흔들기까지…헌법이 구타당하는 시대 [세상읽기]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5.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