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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등록 2016-07-01 20:28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가스등 이펙트>,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랜덤하우스, 2008
잉그리드 버그먼과 샤를 부아예 주연의 1944년 작 영화 <가스등>(Gaslight)은 어떤 인식론과 접속해도 의미 만점의 텍스트다. 원작은 패트릭 해밀턴의 2인 대사의 희곡인데 영화는 조지프 코튼과 앤절라 랜즈베리를 등장시켜 사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부인의 유산을 노리는 남편은 가스등을 조작하여 깜빡이게 하고, 아내는 자신이 본 가스등과 믿어주지 않는 남편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녀는 남편의 의도대로 정신병자가 되어가지만 결국 자기가 본 것을 믿는다.

이 영화는 본 것과 들은 것의 차이, 사회적 약자의 경험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 거짓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장치, 인식 과정의 성별 정치학과 사회성, 자신만의 언어는 어떻게 획득 가능한가 등 수많은 이슈를 제공한다. 미국의 여성 심리 상담가 로빈 스턴은 이 영화를 소재로 쓴 책, <가스등 이펙트>를 통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의 인식론적 곤경을 ‘가스등 효과’라고 명명했다.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133쪽)라고 방황하는 여성들에게 저자는 “옳고 그름 대신 본인의 느낌에 초점을 맞추라”(300쪽)고 조언한다.

이 책은 자신의 인식을 부정하는 사회에 살면서도 바로 그 사회의 주인인 남성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여성들의 ‘실패’를 분석한다. 여성으로 대표되는, 지배 언어에서 배제된 타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 감정을 인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허위의식’, ‘지배 이데올로기’, ‘세뇌’ 등으로 불리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여성학 시간 강사로서 가장 좌절스러운 순간은, 여학생들이 내 강의와 남자친구의 분노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수업을 철회할 때다. 반대로 어떤 여성들은 내 말이 너무 당연하다며 보다 확신에 찬 언어를 요구한다.

인류의 역사를 요약한다면, 강자(백인 남성)의 경험과 기존 언어는 일치하는데 ‘그 외’ 사람들의 삶과 언어는 불일치한다는 것이다. 약자는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이다. ‘저들의 말’은 자본, 권위, 미디어에다 논리적이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내 말’에는 이 모든 자원이 없다. 강자의 언어는 지당하신 말씀이거나 사익을 대변하는 선전에 불과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언어로 돌아간다. 약자에게는 침묵 혹은 ‘적’의 언어로 사회를 설득시키라는 불가능한 임무가 주어진다.

아마도 이 시대 대표적인 진실 게임 중 하나는 “그날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누가 돈을 받았는가,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 ‘몸통’은 누구인가…”를 두고 가스등을 켜대는 세력에게 시달린다.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때 미칠 것 같다. 권력자의 말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민초의 말은 주관적인 피해의식으로 간주된다. 이때 약자의 무기는 단 하나. 자신을 신뢰하고 기존 언어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중얼거림과 산만함,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새롭다. 세상만사, 독창성이 선이고 진부함이 악인 이유다.

이 지면에 ‘라깡 정신분석’, ‘참나원’, ‘트랜서핑 명상센터’의 성폭력 사건을 쓰면서 여성들의 메일을 많이 받는다. 분노와 또 다른 상황 제보가 대부분이지만 “기사(내 글)를 믿어야 할까요? 그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같은 호소도 적지 않다. 그녀들을 너무나 이해한다. 나 역시 항상 혼란스럽다. 나를 믿지만 동시에 과신하지 않는 긴장, 이 새로운 혼란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시인이자 여성주의 사상가 에이드리엔 리치는 영화 <가스등>에 대해 이렇게 썼다.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 사회가 켠 가스등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부정당해왔다. ‘미친 여자’는 오로지 남성의 경험에 의해 판정되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미스테리였다니!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 여성의 인식과 자신감을 믿자, 서로에게 가스등을 켜지 말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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