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표현의 기술>, 글 유시민/만화 정훈이
생각의길, 2016
<표현의 기술>, 글 유시민/만화 정훈이
생각의길, 2016
책 제목 ‘표현의 기술’은 삶의 전부다. 사람은 말과 글을 통해 자기를 만들어가고 세상과 관계 맺는다. 생계도 표현의 기술에 달려 있다. 이 ‘자기 재현의 예술’은 개인의 행복과 공익을 보장한다. 요즘 가장 절실한 공익성 중의 하나는 힐링일 것이다. 평소라면 ‘시장 정의’ 차원에서 사지 않았을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이 내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만화작가 정훈이와 글작가 유시민의 공저라기보다 두 권의 책이다. 11장 정훈이의 “나는 어쩌다가 만화가가 되었나”는 백 쪽(252~264)이 넘는 자서전. 정훈이가 만화가로 성공한 압도적인 원리는 인간으로서 성실성과 진정성이다. 여기서 관찰력이 나온다. 재능, 노력, 운, 열정… 이런 거 아니다. 사람들은 이 간단한 원리를 모른다. 그는 방위병 시절부터 이미 훌륭한 만화가였다. 마지막 장면. 정훈이의 탈고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유시민이 “끝났어요?”라고 묻고 함께 매운탕 집에 간다. 나는 그 장면이 부러웠다. ‘멘토 유시민’이었다. 이런 감정은 그림에서 잘 표현되는 것 같다.
저자(유시민)는 서평을 쓸 때 ‘정보’와 ‘해석’의 균형을 강조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책 내용을 제대로 요약할 수 있는 ‘지식인’ 독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는 그의 글쓰기론에 수많은 사족을 달아가며 읽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했다. 안도현 시인의 유명한 작품 “연탄재‥”에 관한 이야기다(143쪽).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전문)
나는 이 시가 쓰인 상황을 몰랐다. 연애시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논리적인 저자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더러워진 골목길 네가 치울 거냐”로 다시 쓴다. 새침한 이층집 소녀인 양 굴었던 어린 시절, 메마른 겨울에 아래층 골목에서 연탄재를 차고 노는 남자애들이 있었다. “으… 먼지. 쟤네들은 도대체가….” 나는 질색했다. 그 아이들이 뒤집어쓴 흙먼지와 빨랫감이 이 시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다.
1991년 이 시를 썼을 당시 안도현은 전교조 해직교사였다는 저자의 소개와 해석을 읽고 반전이 일어났다. 그가 옳았다. 그의 정보 덕분에 이 시는 나의 시가 되었다. 이 시의 제목이 <너에게 묻는다>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학생을 사랑하고 바르게 가르치고자 했던 교사를 해고한 대통령, 교육부 장관 이하… 관료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람들 참 많다. 사람을 발로 차는 시대다. ‘너에게 묻는다’ 나는 이 문장이 너무 좋다. “당신들은 연탄재를 발로 찰 자격이 없어!”
시인을 최고의 지식인으로 생각하거나 자부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런 축이다. 시는 언어들의 언어,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은유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시 한 줄이 사전 한 권이 될 수도 있다. 시인이 왜 잘났겠는가?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시도 정치적 분노(저자의 해석),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행위(저자), 먼지에 대한 공포(나) 등으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소수의 사악함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정치적 글쓰기는 사악함과 투쟁하는 일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극복하려고 하는 일입니다.”(102쪽) 저자는 낙관적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는 ‘사악한 다수’가 점령했다. 몇 주째 이 지면에 등장하는 ‘라깡 정신분석’, ‘참나원’, ‘트랜서핑 명상센터’의 남성 세 명의 성폭력과 난행(亂行)은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을 정도다.
조지 오웰의 저자 버전인,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의지, (좋은)정치적 목적. 나는 모두 아니다. 나는 승부욕이다. “말로든 글로든,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는 맙시다.”(97쪽) 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글을 쓰는데.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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