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죽음은 외주화의 민낯을 드러내고, 원청의 ‘갑질’을 까발리고, 경찰의 수사까지 이르게 했다. 그가 19살이 아니었더라도, 그의 가방에 컵라면이 없었더라도, 그가 생일 전날 떠나지 않았더라도, 여기까지 왔을까?
5월28일 토요일 밤, 구의역 사고 소식이 떴다. ‘안전매뉴얼은 또 작동 안했다’ 같은 기사를 싣게 되겠군, 막연히 생각했다. 노동자들의 사고 기사에 생긴 관성. 일요일, ‘또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이번에도 매뉴얼 지켜지지 않아’라는 보고엔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메모가 달렸다. “19살이니 잘 챙겨보라” 했지만 아침보고 이상을 예상치 않았다. 오후, 유족들을 만난 이재욱 기자의 메모가 올라왔다. 생일, 컵라면, 열악한 근무조건…. “사람 이야기로 쓰자.” 저녁 7시, 디지털부문에 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단독기사니 톱으로 올려줘요.” 얼마 뒤 취재기자가 ‘단독’ 표시를 뺄 수 없냐고 조심스레 말해왔다. 19살 노동자 죽음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젊은 후배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날 밤, ‘단독’을 뗀 그 기사는 온라인을 타고 퍼져나갔다. 유족이 건넨 유품 사진 중 한 컷과 함께.
파장은 컸다. 월요일, 구의역 9-4 승강장에 추모 포스트잇이 붙고, 작업 안전의 핵심인 2인1조 수리를 불가능하게 했던 용역업체 은성피에스디(PSD)의 인력구조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화요일, ‘외주화의 비극’을 출고하다가 외주화 자체보다 서울메트로에서 은성으로 옮긴 이른바 ‘전적자’의 특혜를 더 부각하고픈 유혹에 잠시 빠졌다. 기술자격증도 대부분 없는 이들은 비메트로 출신의 월급 2~3배를 받고 본사보다도 2~3년 긴 정년을 보장받고 있었다. 하루이틀 뒤 아니나 다를까, ‘메피아’라는 단어를 내세운 보도들이 쏟아졌다.
가장 쉽게 분노하는 방법은 특정 집단에 ‘낙인’을 찍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스러웠다. ‘메피아론’이 애초 이런 용역업체가 생겨난 원인을 가리진 않을까? 나이 50대에 공기업 직원에서 용역업체 직원 신분이 됐던 전적자들을 ‘관피아’ 같은 권력의 낙하산과 등치시킬 수 있을까?
스크린도어가 급증한 2011년 설립된 은성의 구조는 8년 전 분사안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2008년 당시 메트로는 인건비 10%를 줄이기 위해 유실물센터부터 전동차 정비까지 대대적인 분사를 추진한다. 안전과 직결되는 전동차 검사 주기도 연장했다. 직원을 불법적으로 정리해고할 순 없으니, 메트로 출신의 정년 연장 및 원래 임금의 70% 보장 등을 계약조건으로 내걸고 용역업체에 사업을 맡기는 황당한 분사가 이뤄졌다. 노조 쪽은 이런 계약조건이 “특혜 보장이자 위장도급”이라며 격렬히 반대했지만, 서울시는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용역계약 심사도 생략하며 메트로를 밀어줬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기업 10% 인력 감축’은 본사의 숫자만 줄면 그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분사안을 심의·확정한 ‘창의혁신시민위원회’엔 저 유명한 창조컨설팅 대표부터 5개 매체 언론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얼마 전 만난 메트로 직원은 말했다. “직원 모두가 메피아로 몰리는 게 억울하죠. 하지만 이 기회에 제대로 다 파헤쳤으면 싶기도 해요. 8년 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의 죽음으로 외주화의 광풍이 멈추게 될까. 지금은 직영화 전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공기업 인원이 다시 늘거나 적자 해결을 위해 세금 투입이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해도 사람들은 같은 마음일까. 6월9일 목요일, 그의 발인 날에야 나는 구의역에 갔다. 8·9·10 승강장 빼곡한 포스트잇 위쪽에 생일 고깔모자가 걸려 있었다.
김영희 사회에디터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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