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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네가 나야

등록 2016-06-10 19:12수정 2016-06-10 20:43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획·채록, 나무연필, 2016

대개 서울의 지하철 강남역을 ‘강남 문화’의 메카로 생각하지만 다른 모습도 있다. 강남역은, 서울에 살면서 ‘○○캠퍼스’에 다니는 대학생과 ‘위성도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광역버스로 갈아타는 번잡한 곳이다. 어느 네티즌의 표현대로, ‘마이너리티’의 거리이기도 하다. 그곳에 ‘된장녀’는 없다.

지난 5월17일,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 증오 살인. 이 책의 저자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의 포스트잇을 붙였던 시민들이다.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들은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포스트잇 1004개를 일일이 촬영하고 채록했다. 인세 전액은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책으로 다시 기부되고 전자책은 무료 배포된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두 가지 희망을 주었다. 아직은 언론/출판의 사명이 남아 있으며, 여성의 역사를 보존하자는 개념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군 위안부’ 경우처럼 생존자의 증언이 역사의 유일한 증거가 될 때 가해자는 그들이 죽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 책은 - 비록 ‘그 여성’은 23세에 희생되었지만 - 사라질 역사를 붙잡은 든든한 첫 발자국이다.

나는 이 책을 아들을 키우는 부모,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여성, 페미니스트, 특히 여성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 나는 포스트잇을 읽고 ‘놀랐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들에게 여성주의를 ‘가르칠’ 사람은 없다. 20~30대가 대부분인 이들은 이미 여성의 현실과 여성주의적 사유를 체현하고 있었다.

“네가 나야(원문은 “너가 나야”). 또 다른 내가 죽은 세월호, 강남역. 우리가 살아남을 곳이 한국에 있을까?(170쪽) 이 말에는 성차별, 연대, 한국 사회가 압축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여자에겐 무시당할 수 없었던 남자”, “혐오가 살인을 만들었는데 왜 혐오에 대한 합의 없이 추모를 방해합니까”, “오늘도 억지로 ‘남장’을 해서 살아남았다(당신을 기억하는 트랜스 여성이)”….

“당신을 보러 대전에서 왔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남자에게 보호받고 싶지 않습니다. 남자 없이도 안전하고 싶을 뿐이에요”, “(남성을)범죄자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여자는 이미 ‘피해자’로 일반화됐다!”, “칼끝이 향한 곳이 분명한데 어떻게 눈먼 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1994년 출생 성비 116. 셋째 성비 200 이상. 태어난 것만으로도 ‘살아남은’ 세대. 얼마나 더 ‘살아남아야’ 하나요”,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여성의 처지는 같지 않다. 수많은 차이가 있다. 계급, 인종, 나이, 성정체성, 지역, 장애…. 이것은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적대적 모순 관계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여성으로 일반화해버릴 수 있는 권력이 가부장제다. 여성이 개인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남성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중심으로 여성의 가치를 정의해왔다. 여성은 남성의 산물이다. ‘개인 남성’이 ‘전체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작은’ 공통분모 하나 때문에 일상과 목숨을 잃는 세상에서, 여성은 일시적으로 “너는 나다”라는 정체성의 정치를 주장한다. 여성의 저항은 그 자체로 보편적인 사회정의다. 이들의 목소리가 가시화되면 여성의 복종으로 성립되어온 가부장제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차별은 일상이고 살인은 극단인가? 그렇지 않다. 여성 살해는 일상의 연결이자 수순이다. 성 소수자나 ‘흑인’의 경우와 같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 지면에 계속 등장할 ‘라깡 정신분석’, ‘참나원’, ‘트랜서핑 명상센터’의 남성 세 명은 여성들로부터 돈, 섹스, 복종 등 원하는 모든 것을 취하면서 여전히 “타인의 내면을 치유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포기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하지만 나를 비롯, 피해여성들이 지칠 것이라는 착각은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포스트잇의 가장 많은 내용은 “잊지 않겠다”였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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