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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배하는 치유자

등록 2016-06-03 19:24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프로이트 심리학 비판>, H. 마르쿠제 / E. 프롬 지음
오태환 옮김, 1987, 선영사
말을 섞는 것은 살을 섞는 것보다 관능적인 행위다. 나는 섹스보다 대화가 더 심각한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말이 통한 다음에 올 천국과 파국을 알기에, 되도록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엮이는 것만큼 재앙도 없다. 말은 물질이다. 말 한마디는 빚만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한다. 나는 예전에 이송희일 감독의 “우린 친구가 없으면 끝이잖아”, 올해로 스물한 번째를 맞은 서울인권영화제 표어 “나는 오류입니까”로 몇 달 버틸 양식을 구했다.

페미니스트를 제외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는 프로이트고 가장 빼어난 이론은 정신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사유의 독창성, 이론 내부의 자기배반적 질문들, 모순을 지나치지 않는 집요함, 모든 이분법의 해체… 무엇보다 그 성실성! 푸코나 라깡의 저작 중에는 강의록이 많다. 그러나 그가 ‘쓴 것’을 보라(<내가 쓴 것, What I Have Written>이라는 프로이트적인 영화도 있다). 세 시간짜리 강의가 있다면, 세 시간 내내 서서 말하는 강사가 있고 프로젝트 빔을 틀고 강사와 수강생 모두 자는 강의가 있다(나는 ‘같은 강사료’에 분노한다). 지나친 비유인가?

그가 해체한 이분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인식론은 말의 유물론이다. 상담 치료(talking cure, 담화 요법)는 약물이나 수술이 아닌 언어로 육체의 고통을 없애거나 경감한다. 상담자와 내담자(“분석자와 피분석자”)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동안”)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그 관계는 앞서 말한 대화처럼 사랑과 찬미, 집착, 증오, 반발, 도전이 뒤섞인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과정은 상담가의 자질 때문이 아니라 대화(분석) 상황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담자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인간관계를 대리 체험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그 유명한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인 전이(轉移, transference)다. 전이의 발견과 분석은 의사로서, 사상가로서 프로이트의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내담자의 어린 시절에 집중함으로써 전이는 부모와의 관계가 전부처럼 여겨졌고 내담자는 유아화되었다. 전이는 치료의 중간 단계다. 분석자는 피분석자의 감정을 거절해야 하고 피분석자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마르쿠제와 프롬은 프로이트 이론의 명암을 분석한다. 두 사람 모두 명석한 정신분석학자이기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확장하면서도 누수(漏水)를 정확히 짚어낸다. 마르쿠제는 “사회적 전이”, 즉 무력한 개인들이 권위적인 지도자를 원하는 현상을 비판한다(207~213쪽). ‘악’이 판치는 사회일수록 등장하는 자칭 구원자, 치유자, 멘토들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도 이들의 전성기다. 히틀러나 드골의 카리스마에 대한 대중의 맹목적인 두려움과 숭배, 애정은 현대사회에서 흔한 일이다. 트럼프 현상은 가장 쉬운 예이면서, 메시아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르쿠제는 전이가 분석자의 직업병을 조장하는 요인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로부터 직업상의 애정과 절박한 믿음을 경험함으로써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대개 분석자는 남성, 피분석자는 여성으로 성별화되어 있다. 이때 전형적인 남녀 관계, 상담에서는 최악의 인간관계로 전락하게 된다. 성폭력 가해자들 중에는 이 ‘달콤함’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힐링 방면의 직업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여성신학의 선구자 메리 데일리는 여성주의 의식이 없는 상담자(therapist)는 폭력범(the/rapist)이라고 썼다. 나는 그간 이 지면에서 ‘참자아’, ‘라깡 정신분석’, ‘마인드 코칭’이라는 상호(商號)의 상담실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 여성 내담자의 취약성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성, 금품, 감정을 갈취하는 이들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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